
사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관예우' 의혹이다. 과장이 아니다.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빼면 법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퇴임한 판·검사가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유리한 판결을 받아낸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법원은 껍데기만 남는다.
이 때문에 사법부는 전관예우 의혹을 씻기 위해 외연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형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가 무효라는 판결을 확정했고, 한 대법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들을 굳이 '외연적'이라고 한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과연 법원의 의지가 확고한지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노력 가운데 최근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서울중앙지법 형사부가 내건 재판부 재배당 방침이다. 재판부와 일정한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넘긴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재판부를 기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재배당 방침은 성과를 거뒀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재판장과 동기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됐다. 방위산업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도 재판장과 고교 동문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가 다른 재판부로 넘겨졌다.
진짜 문제는 이같은 노력이 진작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부 언론은 서울중앙지법의 방침을 '첫 시도'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잘못됐다. 대법원은 이미 20년 전 재판부와 친족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면 재배당하는 내용의 예규를 도입했다.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재판장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예규도 과거부터 존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같은 예규를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은 물론 일부 언론마저 이같은 예규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은 각급 법원들이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기본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사법부의 저울은 국민의 신뢰 없이는 절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노력을 계기로 전국 법원들이 전관예우 의혹을 떨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