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4월7일 신문의 날로 제정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구절을 떼어 쓴즉 아무라도 이 신문을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라.'(1896년4월7일 독립신문 창간사 중)
120년 전 오늘(1896년 4월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서재필이 독립협회 기관지로 창간한 독립신문은 총 4페이지로 구성됐다. 제호(신문 이름)부터 3면까지 순한글이고 마지막 1면은 영문판(인디펜던트)이다.
독립신문 영문판은 당시 외국인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창간 이듬해인 1897년 1월 5일부터는 국문판과 영문판을 분리해 두 가지 신문을 발행했다.
독립신문은 처음으로 가로 제호와 한글 전용, 띄어쓰기 등을 도입했다. 이는 국내 근대 개화 운동사와 언론사, 국어사 등 개화기 각 분야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창간사에선 '전국 인민을 위해 무슨 일이든 대변자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알릴 것이며 부정부패·탐관오리 등을 고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실제로 1면 머리에 논설을 실어 정부와 집권 위정자들을 비판했고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등 민간 신문의 모델이 됐다.
특히 신문의 체제와 기사 작성법 등은 국내 신문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7년부터는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독립신문 창간 이전 신문은 1883년 정부에서 발행한 한성순보가 유일했다. 한성순보는 기사가 한문으로 작성돼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민중들이 쉽게 접하지 못했다.
사실 창간 초기 독립신문은 국민계몽과 대중들에게 정부 시책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도 독립신문이 제시한 제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1897년 개혁파와 수구파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개혁파 중심의 독립신문은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탐관오리들을 서슴없이 고발했다.
이후 정부 탄압은 점점 더 심해졌다. 독립신문은 정부 탄압과 수구파들의 공격으로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결국 1899년 12월4일 3년만에 폐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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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립신문은 2012년 10월17일 등록문화재 제506호로 지정됐으며 연세대학교가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