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인도의 아버지', 울분·고통 담긴 시집으로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1929년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조선)을 소재로 지은 시 '동방의 등불'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75년 전 오늘(1941년 8월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였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간디와 함께 인도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그는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폭압에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간디는 그를 '위대한스승'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1861년 인도 콜카타 대부호(브라만 계급)의 14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정규교육에는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학업을 포기하던 11살 즈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6살에 첫 시집 '들꽃'을 발표했다.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다섯째 형에게 길러졌지만 피는 못 속였다. 그의 아버지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벵골 문예부흥의 핵심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이후 관직이나 사업 하기를 원했던 가족들의 지원을 받아 영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1년 반 만에 다시 돌아온다. 이 기간 유럽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귀국 후 가문의 자금 등을 관리하며 시와 소설, 희곡 등 본격 작품 활동을 벌인다.
그는 가문의 농가 등을 관리하면서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목격하고, 농촌 개혁에 뜻을 품는다. 농업 공동체를 설립하고 교육 등을 통해 개혁을 추진한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계몽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지만, 재정난을 겪었다. 그가 세운 학당은 비스바바라티 대학으로 발전, 현재는 국립대학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큰 시련이 닥친다. 아버지와, 아내, 딸 등의 죽음을 겪으면서 종교적 사상에 빠져들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그의 시도 이 시기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는 유신론과 대립하며 '범신론'(모든 생물이 신의 모습)을 주창한다.
독자들의 PICK!
그가 겪었던 이 같은 고통과 울분은 1910년 출판한 한 권의 시집 '기탄잘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 문호 반열에 오른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라 더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후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동·서문화 융합과 벵골 독립 운동 등에 힘을 쏟았다. 시집과 희곡, 소설, 음악 등을 비롯 다양한 분야에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지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