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오늘…"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을 흔들다

28년 전 오늘…"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을 흔들다

이미영 기자
2016.10.15 06:00

[역사 속 오늘] 지강헌 일당 탈주 후 가정집 침입해 인질극 벌여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지강헌 일당/사진=나무위키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지강헌 일당/사진=나무위키

'쨍그랑'

유리창이 깨졌다. 가정집 창문에 얼굴을 내비친 한 사내는 그 유리창 조각 하나를 들어 자신의 목에 겨눴다. 거침없이 자신의 목에 유리로 만든 흉기를 꽂았다.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그와 대치중인 경찰로부터 요청받은 카세트테이프를 튼 라디오에선 음울하고 구슬픈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이 장면은 전국민이 보는 TV로 생중계됐다.

그의 돌발행동에 경찰은 그를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은 그의 무릎과 배를 관통했다. 곧바로 경찰에 붙잡힌 그는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28년 전 오늘 (1988년 10월15일) 지강헌(당시 나이 35세)과 그 일당이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하던 중 탈주해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이 벌어진 날이다.

이 일당 중 한명인 강영일(당시 21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겨 더 유명해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탈주범의 잔혹한 인질극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구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탈주는 '충동'이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영등포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죄수 25명은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공주교도소로 이송되기 위한 차량에 몸을 실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이들은 수감생활을 하면서 머리카락에 숨길 정도로 얇게 제작한 도구를 재빨리 꺼내 수갑을 풀었다. 이송 중이던 죄수 25명 중 12명이 탈주에 성공했다.

이들은 수감되기 전까지 서로 모르던 사이였지만 그들이 놀라운 '팀워크'를 보였던 원동력은 '억울함'이었다. 지강헌은 당시 556만원을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훔친 뒤 도주하다 붙잡혀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의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 감호 10년으로 총 17년. 당시 사회보호법이 도입되면서 상습 범죄자는 형량을 마치더라도 일정기한 동안 보호감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그해 새마을운동본부 공금 76억원을 횡령해 구속됐는데 그의 형량이 '잡범' 수준이었던 그들보다 낮은 징역 7년이었다.

이에 수감자들은 분노했고 결국 탈주를 감행했다. 이들 중 7명은 이내 자수하거나 붙잡혔다. 지강헌을 포함한 4명은 강경했다. 이들은 은신하면서 도주를 이어갔다.

지강헌, 강영일, 안광술(22), 한의철(20)은 탈주한 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고씨의 자택에 침입했다. 지강헌 일당은 고씨 가족을 해치진 않았다.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생활하며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잤다. 경계도 느슨해졌다. 이렇게 닷새가 지난 새벽, 고씨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이 신고를 받은 경찰은 40분만에 고씨 집을 에워쌌다. 이때부터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이 시작됐다. 그날 낮 12시까지 계속된 인질극은 공포 그 자체였다.

지강헌은 경찰에 자신들의 인질극을 생중계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그의 요구를 수용했고 그와 그 일당의 인질극은 방송으로 생중계 됐다.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질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광술과 한의철은 경찰과 대치하는 도중 지강헌이 호송차량에서 훔쳐온 권총을 가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질극 도중 강영일은 지강헌의 권유로 자수했다. 지강헌은 끝까지 대치하다 스스로 자해한 끝에 경찰의 총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들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구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의 불공정성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들과 함께 탈주했던 마지막 1명인 김길호는 1990년 7월1일 1년9개월만에 붙잡혔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이 사건을 계기로 뜻하지 않게 '국민 팝송'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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