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오늘…기아차, 현대 품으로 넘어가다

18년 전 오늘…기아차, 현대 품으로 넘어가다

이슈팀 김도영 기자
2016.10.19 06:00

[역사 속 오늘] 車 공룡기업 탄생…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원

18년 전 오늘(1998년 10월19일) 한국 자동차 산업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의 공개입찰 경쟁자 중 최종낙찰자로 결정되면서 대한민국 자동차업계 '공룡기업'이 탄생한 것.

국내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생산한 기아자동차는 1944년 12월11일 '경성정공'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하고, 1952년 2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다. (당시 자전거 사업부는 1979년 '삼천리자전거'로 분사 후 1985년 기아그룹에서 독립했다.)

기아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76년 10월 아시아자동차공업을 인수하고 1980년대에는 소형승합차 봉고 코치는 ‘봉고 신화’를 창조하며 기아산업의 주력 차종이 됐다.

이후 승합차 베스타, 소형승용차 프라이드 등을 출시하며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 선두를 차지했고 1990년 3월 '기아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했다.

기아그룹은 1997년 기아차를 중심으로 28개 계열사에 직원 5만5000명, 1996년 기준 자동차 수출 30억달러의 재계 순위 8위의 거대 그룹이 됐다.

하지만 정상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국제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경기침체,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등이 맞물리면서 위기설에 휩싸였고 결국 1997년 7월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됐다.

1년3개월간 이어진 기아 사태는 1년 후 국제입찰을 통해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현대차가 기아차 채권단에 제시한 부채탕감액은 7조3000억원.

당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과 법률자문단 평가에 따르면 현대차는 부채감축 조건을 포함한 평가 전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 다음으로 대우차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수 후보에는 포드와 삼성차도 있었지만 실격 처리되거나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당시 세계 생산능력순위 13위였던 현대차는 기아차 인수 이후 10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현대차는 기아차 인수를 계기로 자동차사업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2부문으로 각각 통합했다. 이 두 회사에 대한 총괄 운영은 자동차부문 기획 조정위원회가 담당하고 연구개발부문은 현대와 기아를 통합해 회장 직속으로 운영하게 했다.

이후 2000년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서 분가하면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탄생했다. 하지만 2011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정통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기아' 이름을 빼고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은 자동차 판매량만 575만대(2010년 기준)로 세계 4위, 자산총액 재계 2위인 209조원(2016년 4월 기준)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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