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총 160일 간 52차례 공판…증인 59명 신문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뇌물죄 공판이 7일 끝으로 마무리된다. 선고는 이 부회장의 구속기간 만료일인 27일 이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재판은 결심공판까지 160일에 걸쳐 진행됐다. 3차례의 공판준비기일과 52차례의 공판기일이 열렸다. 재판시간은 약 475시간에 달했고, 총 59명의 증인이 법정에 나와 신문을 받았다.
이 부회장의 사건은 지난 2월28일 박영수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된 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에 배당됐다. 이 부회장에 대한 1차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바 있는 조 부장판사는 재배당을 요청했고, 사건은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로 넘어갔다.
지난 3월9일 형사합의33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 측은 특검이 공소장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특검에서 파견근무 중인 검사가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 측이 조치하지 않으면 공소제기 자체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혐의를 두고 본안 쟁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신경전을 펼쳤다.
이후 2회 공판준비기일을 앞둔 상황에서 이 부장판사의 친인척이 최순실씨(61)와 인연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부장판사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재판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단 이유로 재배당을 요청했다. 결국 사건은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맡게 됐다.
이 부회장의 재판은 같은달 31일 3회 공판준비기일을 끝으로 서류증거 조사와 증인신문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4월19일 재판에서 특검은 서증조사 도중 이 부회장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65)과의 독대 당시 부정청탁을 주고받은 적이 없고, 정유라씨(21) 승마지원은 보고받지 못했다며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재판부는 지난 5월2일부터 증인신문을 개시했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을 시작으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증언대에 섰다. 이중 지난달 5일 재판에 나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은 법정에서 자신의 업무수첩 내용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이 전화로 불러준 것을 적은 것"이라고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부터 이 부회장의 단독 면담까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챙긴 당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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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첩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엘리엇의 개입, 금융지주회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내용 등 삼성의 경영현안들이 적혀 있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승마 등 최씨가 깊숙이 관여한 내용들에 대한 메모도 있었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의 수첩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부정청탁을 입증할 유력한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이 수첩은 정황증거로 채택됐다.
같은달 12일엔 정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판부도 "재판 시작 30분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급작스러운 출석이었다. 정씨는 재판에서 "'삼성이 왜 나만 지원해'라고 물으니 엄마(최씨)가 화를 냈다"는 등 삼성 측에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다만 삼성 뇌물 사건의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법원은 구인장까지 발부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우려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구인장 집행을 거부하면서 증인 신문은 무산됐다. 최씨는 같은달 26일 법정에 나왔으나 "특검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이 부회장 등 피고인 5명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3일까지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들을 반박하는 데 주력했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정씨가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박상진 전 대외협력담당 사장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진술은 조작"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은 박 전 사장으로부터 '삼성이 정씨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룹 내 '2인자'로 꼽히는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은 정씨 승마지원은 본인이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정씨 승마지원에 대해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도 최 전 부회장이 모두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또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경영현안 해결을 청탁한 적도, 정씨 승마지원 요구를 받은 적도 없다는 등 특검 수사단계에서 했던 주장을 대부분 반복했다.
결심 전 마지막 절차였던 공방기일에서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은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였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라는 은밀한 방식으로 범행을 모의했으며, 독대 기간을 전후해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편의를 봐준 정황도 여럿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건은 삼성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자금 요구를 거절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뇌물죄 적용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과거 부정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대통령 친인척들은 대개 알선수재죄가 적용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비선실세'였던 최씨가 중심인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구조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도 특검이 굳이 뇌물죄를 적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뇌물죄는 금품을 준 쪽과 받은 쪽 모두 처벌받는다. 이와 달리 공무원 직무에 관한 로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알선수재'는 처벌을 받지만, 금품을 건넨 '알선증재'는 처벌 조항이 없다. 변호인단은 "왜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의 친인척에게 특별히 청탁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았는지, 왜 삼성이 처벌받아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변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