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A씨는 인터넷 방송 BJ의 생방송에 자주 참여하는 '열혈팬'이었다. 그러나 A씨가 방송 채팅방에서 욕설을 내뱉는 등 '비매너 행동'을 이어가자 강제 퇴장을 당했다. 앙심을 품은 A씨는 BJ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토킹을 이어갔다. 그러다 A씨는 BJ의 모친이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아가 모친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의사에 반해 특정인에게 접근하는 범죄인 스토킹이 점차 흉악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가족까지 살해하거나 뒤쫓는 등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스토킹을 강력 처벌하는 법령이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 주변을 보호하는 조항이 미흡해 실질적인 예방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공인중개사 B씨(50대·여성)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도에서부터 차량을 몰고 온 A씨는 B씨를 살해한 뒤 200m 떨어진 빌라에 차량을 세워 둔 뒤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A씨가 전세금 반환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A씨는 B씨의 딸인 인터넷 방송 진행자 C씨의 개인방송 시청자였다. A씨는 손가락에 꼽히던 '열혈팬'(금액을 많이 후원한 팬)이었지만 잦은 욕설로 C씨의 방송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화가 난 A씨는 C씨에게 '복수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딸을 만나게 해달라'며 B씨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B씨가 이를 거절하자 A씨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평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BJ들을 향한 스토킹 행위로 알려져 있었던 A씨는 결국 B씨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범행을 위해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또 범행 직전에도 C씨에게 협박 문자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이 스토킹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범행 대상이 확대되는 사례는 끊임없이 나온다. 지난 3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20대 여성을 스토킹하다 그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살해한 김태현(25)이 대표적이다. 김태현은 연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노원구 집까지 찾아가 여동생과 어머니, 피해여성까지 차례로 살해했다.
전문가들은 스토커들이 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지적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신의 가족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시달린다면 당연히 스토킹을 막기 위해 개입을 하게 된다"며 "대부분의 스토커들은 독점적인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우선 제거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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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전문가들은 스토킹의 피해자가 언제든 가족·지인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오는 20일부터 경범죄로 분류됐던 스토킹을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도록 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지만 반의사불벌 조항은 아쉬운 점으로 지목된다. 가해자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나 그 가족을 되레 협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스토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거나 가족을 살해하는 등 피해자 주변의 친밀한 관계로까지 범행대상이 확대되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며 "스토킹처벌법이 행위·피해자의 범위도 너무 협소하게 지정되어 있는 등 문제가 많아 피해자 보호에 적극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역촌동 사건은 스토킹 유지가 어려우니 괴롭히는 방법을 (살해라는)극단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며 "시행되는 처벌법에도 반의사불벌죄가 남아 있거나 가족 보호가 미흡한 등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관련법을 개정해 피해자 보호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