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미납추징금 31조, 숨기긴 쉽고 뺏긴 어렵다] ①"세금은 잘 걷으면서 범죄수익은 못 회수하나"

31조2788억원. 올해 1월 기준 유죄판결이 확정돼 몰수·추징 결정이 났지만 거두지 못한 범죄수익이다. 정치권과 기업, 금융,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매년 거액의 부정자금, 횡령 사건이 잇따르지만 법원 판결 이후 추징되는 자금은 미미하다. 지난해 검찰이 환수한 돈은 1009억원으로 전체 누적 미집행 추징금의 0.32%에 그친다.
올해 1~2월 누계 국세수입에서 '세수 펑크'가 발생한 16조원의 2배에 달하는 돈이 나라 곳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유류세를 올리려는 정부 검토안과 맞물려 최근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900억원대 미집행 추징금이 조명을 받으면서 인터넷엔 '세금은 잘 걷으면서 범죄수익은 안 걷나, 못 걷나'라는 풍자글까지 등장했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범죄수익 미집행 추징금은 2015년 25조8454억원에서 지난해 31조3837억원까지 늘었다가 올 1월 31조2788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돈이 환수되지만 금융범죄로 늘어나는 범죄수익을 추징 실적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건수로 보면 올해 1월 471건이 추징집행됐는데 이는 집행해야 할 3만3129건(누적)의 1.42%에 불과하다.
미집행 추징금의 90%가 100억원대 이상의 고액사건이다. 2006년 대법원 판결 등으로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임원들에게 확정된 추징금 23조358억원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거둬들인 자금은 지금까지 893억원에 불과하다. 전두환씨의 경우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됐지만 미집행 추징금(922억원)이 전체금액의 40%가 넘는다.
범죄수익 추징 실적이 저조한 것은 현행법상 제약 탓이 크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추징집행 당사자가 사망하면 추징 절차가 중지된다.
18조원 가까운 추징금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회장이 2019년 사망하면서 관련 재산 환수가 사실상 멈춰섰다. 최근 논란인 전두환씨의 사례 역시 국회에서 2013년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까지 만들어 전씨의 재산을 취득한 제3자에 대해서도 추징할 수 있도록 길을 텄지만 2021년 전씨의 사망으로 제동이 걸렸다.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범죄수익 은닉수법이 빠르게 고도화하는 것도 저조한 집행률의 이유로 꼽힌다. 벌금은 납부하지 않으면 노역장 유치 등으로 강제하지만 추징금은 안 내고 버티더라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 수사당국이 재산추적에 열을 올리지만 명의신탁, 차명계좌는 물론이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가상자산으로 자금을 세탁할 경우 환수가 쉽지 않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추징대상자들은 대부분 재산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분산시키거나 가상자산 같은 다른 자산으로 바꿔 해외로 옮기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추적하는 데 오래 걸리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자금추적에 성공하더라도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추징대상자의 자금인지 파악하는 게 또 다른 문제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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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 전담인력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해 부산·수원 등 전국 8개청에서 범죄수익환수 전담조직을 운영하지만 인력은 도합 500명도 되지 않는다. 1인당 맡는 사건이 60~70건인 데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7개청에서는 비공식 직제로 전담팀을 운영해 대부분 공판이나 다른 형사사건과 함께 다루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적어도 검사 1명은 추징업무를 전담하라는 지침이 있긴 하지만 일선청 사정이 열악해 쉽지 않다"며 "인력 보충과 조직 정비 등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