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법을 어겨 본 건 주차위반밖에 없어요. 우리가 세금도 다 내고 살았는데 내가 피해자가 되고 나니 외국인이라고 도와주기 어렵다고 합니다."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1일 오전 인천 연수구 재외동포청 출입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재한 중국동포 고홍남씨(42)의 말이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인데도 내국인에 비해 적절한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이날 호소문을 꺼내 읽으며 "낙찰자로부터 이번 주까지 집을 비우라는 내용증명을 받고 이삿짐을 싸고는 있는데 갈 곳이 없다"며 "당장 온 가족이 거주할 곳이 없어 도움을 요청했는데 관련 기관들은 하나같이 국민이 아니라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식구들은 각자 고시원이라도 들어가 산다고 해도 저의 딸은 이제 고작 8살"이라며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전세사기 결론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가족이 버틸 수 있는 방 1칸을 얻을 수 있게 해달란 것"이라고 했다.
고씨에게 '신탁사기' 수법으로 사기를 친 피의자는 재판받고 있지만 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없다. 고씨가 집주인이라고 믿었던 남성은 사기꾼이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 낙찰됐다. 전세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는 새 집주인은 고씨 가족에게 다음주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고씨 딸의 개학은 오는 24일인데 당장 가족들은 지낼 곳이 없다.
고씨의 노부모와 가족은 모두 중국 국적이다. 영주권이 있는 고씨 어머니는 20여년간 한국에서 일했고 고씨 부부도 곧 영주권을 받을 예정이다.
현재 외국인은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주거 지원이나 금융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긴급 주거 지원을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 임대주택 공급 등의 혜택도 규정상 대상을 한국인으로 제한한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재외동포청장과 인천시장, 국토부장관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곡히 도와달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는 고씨의 아내와, 70대 부모, 8살 딸도 참여했다. 또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 관계자도 참석해 고씨의 사연을 소개하고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알렸다.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LH와 국토부는 고씨처럼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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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는 외국인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 과정이 내국인에 비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부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하루 시간을 내서 피해 신청을 하려고 하면 동사무소에서 어떤 서류를 받아오라고 하고 그걸 받아 가면 등기를 받아오라고 하는 등 같은 곳을 몇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하루에 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필요한 서류를 안내 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이후 피해자로 인정된 것은 1901명에 불과하다. 이중 외국인은 극히 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