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덕질·은퇴 후 봉사, 새 인생 사는 노인들

인생 첫 덕질·은퇴 후 봉사, 새 인생 사는 노인들

김지성 기자, 천현정 기자, 정진솔 기자, 이지현 기자
2024.01.01 05:30

[오팔(OPAL·Older People with Active Lives)세대가 온다] 그들은 누구인가 1-②

[편집자주] 1958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무려 100만 명.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의학에서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만 65세'에 지난해 대거 합류했다. 숨 쉬는 모든 순간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58년생 개띠들은 사회에서 은퇴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첫 세대로 꼽힌다. 나보다 가족의 건강을 우선시한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살아있는 동안 '건강한 장수'를 꿈꾸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웰니스(Wellness)'다. 의료계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길어진 평균수명과 이들의 건강관리 수요를 반영해 치료법마저 바꾸고 있다.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주위에서 할머니라고 부르긴 하는데 제 마음은 젊어요. 아직 소녀 같아요. 그래서 일도 75세까지는 하려고 하고 있어요."

요양사 일을 하며 가수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 활동을 하고 있는 현미숙씨(66)의 말이다. 전업주부였던 현씨는 자녀들은 모두 출가시킨 4∼5년 전 일을 시작했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료한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발전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따놨던 자격증으로 일을 시작했다"며 "건강에도 좋고, 돈을 벌어 취미 생활에도 쓰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달 65~70세 고령인구 30여명을 대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 생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주제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남 목포 문태고 1959년생 동문, 경기 의정부여고 동문, 가수 임영웅씨 팬클럽인 '영웅시대' 회원 등이다.

노인이 됐지만 계속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경제적인 목적도 있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할 일이 있는 것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이롭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젊을 때 비해 체력은 떨어지니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단기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4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김인숙씨(66)는 은퇴 후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일을 하고 싶어 노인 일자리를 알아봤다가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노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주로 50대에 집중돼 나이 제한이 있더라"라며 "60대, 70대에도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젊은 층과의 일자리 충돌 문제를 해소할 방안으로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거나 과거 커리어를 활용해 서로 교육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의정부여고 13회 졸업생 신성희씨(69)는 "노인이 노인을 가르치는 일자리, 봉사활동이 있으면 좋겠다"며 "스마트폰 사용을 어려워하거나 은행 업무를 잘 못 보는 노인을 노인이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로는 부모님 봉양, 아래로는 자식 양육과 교육을 마친 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노인이 된 이들은 비로소 은퇴한 이후에야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그동안은 생계와 가정을 위해 일하느라 바빴다면 이제 자기 행복을 목적으로 한 경제활동, 취미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16년 동안 요리사로 일하다 퇴직했다는 이연숙씨(65)는 "6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매년 2번씩 검진하러 병원에 간다. 대형 종합병원에 가면 많은 환자를 보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건강하게 더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가수 임영웅이 지난 14일 필리핀 아레나에서 열린 '2023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인 필리핀'(2023 Asia Artist Awards IN THE PHILIPPINES, 이하 '2023 AAA')에서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가수 임영웅이 지난 14일 필리핀 아레나에서 열린 '2023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인 필리핀'(2023 Asia Artist Awards IN THE PHILIPPINES, 이하 '2023 AAA')에서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연예인 '덕질'도 더 이상 젊은 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가수 임영웅씨 팬클럽인 '영웅시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같은 활동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녀가 모두 출가한 뒤 하릴없이 적적한 나날을 보내다 TV에서 우연히 임씨 무대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후 호기심에 관련 영상을 찾아보던 게 이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의 원천이 됐다.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과 별개로 또래 '소녀들'과의 교류가 본인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연, 생일과 같은 가수 관련 행사를 명분으로 모이지만 지방 공연을 보러 간 김에 그 지역을 함께 여행하고 요즘 사는 얘기를 나누는 등 서로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렇게 친해진 이들과는 아플 때 서로 돌봐주고 경조사를 챙기거나 김장을 돕는 등 가족보다 왕래가 잦아졌다.

영웅시대 활동을 하고 있는 현씨는 "부산 콘서트를 하루 가더라도 영웅시대 사람들과 2박3일 일정을 잡아 영웅이가 다닌 맛집도 찾아다니고 숙소에 누워 영웅이 노래 듣고 하는데 이런 시간이 생활의 활력소가 돼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며 "얼마 전엔 영웅시대 동생이 김장한다고 해 다른 언니랑 같이 가서 도와주고 왔다. 친구가 아닌 가족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활발한 경제·사회 활동으로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취미와 인간관계는 필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정책과 함께 노인 자신의 적극성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태고 27회 졸업생 박광진씨(65)는 "은퇴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노련한 경험"이라며 "경험을 살려 정년 이후에도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늘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한 노년 생활을 위해서는 정신 건강과 자아 발견이 중요하다"며 "고독한 노인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생활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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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솔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정진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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