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유괴·살해" 두 얼굴의 '미남 체육교사'…'불륜 관계' 여고생이 공범[뉴스속오늘]

"중학생 유괴·살해" 두 얼굴의 '미남 체육교사'…'불륜 관계' 여고생이 공범[뉴스속오늘]

전형주 기자
2025.11.13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0년 11월13일, 중학교 1학년 이윤상군(사진)의 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체육교사를 만난다던 윤상군이 저녁때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부모가 막 경찰에 신고하려던 참이었다. /사진=채널A '행복한 아침'
1980년 11월13일, 중학교 1학년 이윤상군(사진)의 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체육교사를 만난다던 윤상군이 저녁때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부모가 막 경찰에 신고하려던 참이었다. /사진=채널A '행복한 아침'

1980년 11월13일. 중학교 1학년 이윤상군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이후 체육교사를 만난다고 나간 윤상군은 저녁때가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부모가 막 경찰에 신고하려던 찰나에 전화기가 울렸다.

"아들은 우리가 데리고 있다. 우리는 4명이고, 모두 전과자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는데, 돈이 필요하다. 현금 4000만원을 마련하라. 경찰에 신고하면 아들을 죽이겠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남자였다. 윤상군 부친은 "지금 당장 그런 거액을 만들 수 없다. 2000만원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아들만 무사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범인은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난 죽어"

범인은 이듬해 4월10일까지 모두 62통의 전화를 걸었다. 이중 첫 번째 전화 한 통만 남자가, 나머지 61번은 모두 여자가 걸었다. 편지도 5통 보내왔는데, 남성과 여성의 필체가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됐을 뿐 이 이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사진=KBS '속보인'
범인은 이듬해 4월10일까지 모두 62통의 전화를 걸었다. 이중 첫 번째 전화 한 통만 남자가, 나머지 61번은 모두 여자가 걸었다. 편지도 5통 보내왔는데, 남성과 여성의 필체가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됐을 뿐 이 이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사진=KBS '속보인'

밤을 꼬박 새운 가족은 경찰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튿날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아 "아들이 납치됐다"고 신고하는 한편 범인과도 계속 협상을 이어갔다.

첫 통화 사흘 만인 같은 달 16일 저녁 6시40분쯤 범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윤상군. 윤상군은 "이분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난 죽는다"고 외쳤다.

범인은 "첫째 딸을 시켜 20일 저녁 7시까지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한 제과점으로 돈을 들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딸은 제시간에 맞춰 제과점에 도착했만, 범인은 "마음이 바뀌었다. 남산 야외음악당으로 오라"며 장소를 바꿨다. 윤상군 부친이 "야외음악당 위치를 잘 모르겠다"며 시간을 끌자, 범인은 눈치를 챈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통령까지 나선 사건…수사는 제자리걸음
진범은 사건 1년 만인 11월30일 검거됐다. 윤상군이 다니던 학교 체육교사 주영형(당시 28세)과 그를 도운 여고생 2명이 벌인 일로 드러났다. 주영형은 이군이 납치 전 만나기로 했던 체육 교사였다. 코앞에 진범이 있었던 것이다./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진범은 사건 1년 만인 11월30일 검거됐다. 윤상군이 다니던 학교 체육교사 주영형(당시 28세)과 그를 도운 여고생 2명이 벌인 일로 드러났다. 주영형은 이군이 납치 전 만나기로 했던 체육 교사였다. 코앞에 진범이 있었던 것이다./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경찰은 윤상군 집 전화에 녹음장치를 설치하고 집 일대에 형사대를 잠복시켰다. 또 면식범에 의한 계획범죄로 판단해 윤상군과 그 주변 인물 500여명을 조사했다. 하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범인 연락이 뜸해지자, 경찰은 결국 석달 만인 1981년 2월26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범인에게 현상금 1000만원을 걸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국민담화까지 열어 '수사기관에 총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전 대통령은 "모든 수사기관을 동원해 이른 시일 안에 윤상군이 부모 품에 돌아가게 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하라"며 "범인이 무사히 돌려보내면 이번만은 관대히 조치하겠다. 앞으로 이러한 유괴사건이 발생하면 법이 정한 최고의 형으로 엄벌하겠다"고 했다.

전 대통령은 그해 3월11일 수사본부와 윤상군 자택을 연이어 방문해 "범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잡아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라디오프로그램에서는 "언제쯤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며 윤상군을 찾는 캠페인송이 송출될 만큼 주목도가 높았다.

대통령과 여론 압박에 경찰은 수사본부 몸집을 키웠다. 한 달 만에 형사대 규모를 36명에서 322명 8개 반까지 늘렸고, 현상금 3000만원과 1계급 특진을 포상으로 걸었다.

하지만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용의자 1689명, 주변 인물 719명, 차량 8100여대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했고 200여만명에 대한 지문 조회도 실시했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범인은 이듬해 4월10일까지 모두 62통의 전화를 걸었다. 이중 첫 번째 전화 한 통만 남자가, 나머지 61번은 모두 여자가 걸었다. 편지도 5통 보내왔는데, 남성과 여성의 필체가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됐을 뿐 이 이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진범은 코앞에 있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진범은 사건 1년 만인 1981년 11월30일 검거됐다. 윤상군이 다니던 학교 체육교사 주영형(당시 28세)과 그를 도운 여고생 2명이 벌인 일로 드러났다. 주영형은 이군이 납치 전 만나기로 했던 체육 교사였다. 코앞에 진범이 있었던 것이다.

앞서 경찰은 윤상군이 다니던 학교 모든 교직원을 대상으로 알리바이를 캤고, 당연히 주영형도 그 대상이었다. 하지만 주영형은 "이군이 만나기로 해놓고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고, 경찰은 이를 그대로 믿었다. 주영형이 서울대 사범대 출신 엘리트인데다 호감형 외모를 가졌다는 점이 그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주영형이 꼬리를 밟힌 건 그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다. 경찰은 유부남인 주영형이 과거 한 여자중학교에 재직할 당시 여학생 9명을 성폭행하고 20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주영형을 먼저 성폭행 혐의로 체포해 "도박 빚 1000만원을 갚기 위해 윤상군을 유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주영형을 도와 범행을 저지른 공범 A양(당시 여고 1년생)과 B양(여고 2년생)은 주영형과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윤상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에 동원돼 수사에 혼선을 줬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윤상군
/사진=tvN '알쓸범잡2'
/사진=tvN '알쓸범잡2'

범인은 잡혔지만, 윤상군은 돌아오지 못했다. 윤상군을 자택으로 데려간 주영형은 손발을 묶고 테이프로 입을 봉한 뒤 이불을 뒤집어씌워 놨는데 이튿날 질식해 숨을 거뒀다.

주영형은 범행 7일 만인 11월30일 캐리어에 윤상군 시신을 담아 A양과 함께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변에 암매장했다.

유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영형은 1982년 11월23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A양과 B양에게는 편지 작성 가담 등 일부 동조 혐의만 적용돼 A양은 단기 3년 장기 5년, B양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주영형은 확정 판결 7개월 만인 1983년 7월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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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기자

안녕하세요. 스토리팀 전형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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