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아테네 아고라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서 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사가 헤로도토스 등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이 토론과 사유를 이어가던 바로 그 자리다. 책이나 사진으로 보던 민주주의의 요람이 눈앞에 펼쳐지고 책 속 이름들은 그들이 고민하고 논쟁했던 공간 위에 되살아난다.
헤겔이 강의하던 하이델베르크, 하이데거가 사유를 이어가던 프라이부르크, 데이비드 흄이 사서로 일했던 에든버러, 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인 인도의 날란다대학까지. 2019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네 차례 이어진 서울대 철학과의 기행은 철학이 태어난 자리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었다. 텍스트를 넘어 공간과 역사 속에서 철학을 체험하는 시도다.
지난 1월 서울대 철학과 학생 16명은 이상엽 교수와 함께 고대 인도철학과 불교사상의 발원지를 찾아 인도를 방문했다. 붓다가 처음 법을 설한 녹야원(초전법륜지), 날란다 유적 등을 답사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갠지스강의 풍경 속에서 책으로만 접하던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정선욱 씨는 "불교철학과 힌두교철학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존경하는 학자들이 어떤 공간에서 사유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인도 방문은 2019년 시작된 서울대 철학기행의 네 번째 여정이다. 제1회는 그리스에서 철학과 학생 9명이 강성훈 교수와 아테네 아고라,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 터, 아리스토텔레스의 뤼케이온 등을 찾으며 서양 고대철학의 출발점을 짚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행을 잠시 중단했고 4년 만인 2023년 독일을 찾았다. 이우람·이행남 철학과 교수와 학생 7명은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 등을 방문해 헤겔과 하이데거의 흔적을 따라갔다.
2024년 영국·스코틀랜드 기행에서는 철학과 학생 7명이 한성일 교수와 함께 에든버러와 케임브리지 등을 찾아 근대 이후 철학의 흐름을 현장에서 살폈다.
영국 기행에 참여한 철학과 박사과정생 전재원 씨는 "과거 철학자들의 행적을 좇으며 그들이 어떤 삶의 경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형성했는지를 성찰한 것은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며 "그들을 거울로 삼아 제가 어떤 역사적 국면에 서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반성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행은 서울대 철학과 동문회장인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이 후배들과 일정을 함께하며 이어온 후원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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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회장은 "철학자들이 토론하고 사유하던 공간을 직접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제공해주고 싶었다"며 "직접 보고 부딪치며 얻은 생각이 각자의 사고를 더 깊게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AI(인공지능) 등 기술혁신과 가치갈등이 가속화하는 시대에 철학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어떤 삶과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철학기행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사유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