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입니다. 트랙 이용을 금지하겠습니다."
하지장애를 가진 직장인 채지수씨(40)는 지난해 8월 휠체어 레이싱 육상 종목에 도전하기 위해 공공시설인 경기 하남종합운동장을 찾았다가 제지당했다. 운동장 내 육상 트랙에 들어선 지 30분 남짓 지난 시점, 시설 관리인이 퇴장을 요구한 것이다.
채씨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금지 조치의 근거를 요청했다. 이에 하남종합운동장은 '오토바이·킥보드·드론·전동차 등 타인에게 안전사고 발생이 예상될 때는 입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하남시 체육시설관리 운영 규정을 제시했다.
하남종합운동장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종합운동장이 일반인에게 무료 개방된 시설인 관계로 저녁에는 300~400명 정도의 사용 인원이 몰린다"며 "육상 트랙이 축구장을 감싸고 있는 하남종합운동장 구조상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레이싱 휠체어가 아닌 일반 휠체어는 허용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남시는 안전상 바퀴가 달린 기구의 사용을 모두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장애인 차별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하남시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트랙을 이용하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많은 관계로 자전거, 킥보드 등 바퀴 달린 기구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는 조치로써 사용을 막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채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장애인 차별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채씨는 레이싱 휠체어를 오토바이·킥보드와 동일한 위험 기구로 보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장애인의 신체 일부를 위험물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인권위도 지난해 3월 '휠체어는 장애인의 신체 일부이며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운동장에서 휠체어 레이싱 연습이 가로막히는 건 채씨만의 일이 아니다. 경기도 내 공공운동장 상당수는 레이싱 휠체어 이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씨가 제기한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 행정심판에서 하남도시공사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소재 26개 종합운동장 중 6곳을 제외한 약 77%가 레이싱 휠체어를 허용하지 않거나 별도의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상당수의 운동장은 '별도 규정은 없으나 안전상 금지 필요(이용사례 없음)'라고 입장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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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레이싱 선수 출신인 이윤오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직장운동경기부 육상팀 감독은 "의정부 운동장에서는 휠체어, 비장애인, 일반인으로 구역을 나누어 운영 중"이라며 "이러한 노력도 없이 무작정 (레이싱 휠체어) 이용을 막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휠체어를 다리로 사용하는 장애인 입장에서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의정부 운동장과 같은 시설 운영을 확대하기 위해선 법·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체육시설 운영자는 시설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이에 필요한 조치를 다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야외경기장의 경우 '경기장 진입 시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채씨는 "공공시설에서 장애인을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는 관행은 개인의 권리침해를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며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