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북한 전투기를 몰고 귀순해 당시 '반공 아이돌'로 불렸던 고(故) 이웅평의 파란만장한 삶이 재조명됐다. 당시 보상금으로 15억6000만원을 받았지만 평생 한 푼도 쓰지 않았던 사연도 공개됐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을 통해 이웅평의 귀순 과정과 이후의 삶을 조명했다. 이웅평은 귀순 후 대한민국 공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2002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이웅평은 북한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당시 전투기와 함께 넘어온 그의 귀순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그에게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고급 아파트 약 78채를 살 수 있는 규모로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귀순 직후 이웅평은 말 그대로 '스타'가 됐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떠올랐고 1년에 약 900개의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한 해 공식 일정이 약 600회였던 것과 비교해 "대통령보다 이웅평이 더 바쁘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는 150만명이 이웅평을 보기 위해 몰렸다. 제작진은 당시 그의 인기를 두고 '반공 아이돌'이라고 표현했다.
방송에선 이웅평이 귀순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소개됐다. 북한 해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한의 라면 봉지에 적힌 문구가 그의 생각을 뒤흔든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남한에서 흘러온 평범한 물건 하나가 그동안 교육받아온 남한 사회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의 사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이웅평은 귀순 이듬해인 1984년 박선영씨를 만나 결혼했다. 박씨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만난 지 약 4개월 만인 1984년 11월2일 결혼했다. 박씨는 자신의 부모에게 "내가 누구와든 결혼을 할 건데,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낫다"며 "내가 많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탈북자의 삶은 고단했다. 이들 부부는 북한의 보복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했다. 안전을 위해 신혼집은 일반 주택이 아닌 공군 관사에 마련됐다. 결혼한 지 약 1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집 안에서 한국 정보기관이 설치한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고 한다. 북한의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동시에 남한에서는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셈이다. 박씨는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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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평의 마음 한편에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웅평은 한국 정부로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자신의 귀순으로 인해 고통받았을 북한의 가족들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중 이웅평은 북한에 있던 누나는 정치범수용소에서 힘든 생활을 했고 가족들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간경화로 투병하던 이웅평은 수술을 받은 뒤 한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이웅평은 아내 박씨에게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안 해도 될 고생 참 많이 했다. 고마웠다"며 아이들을 잘 길러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꼬꼬무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윤유선과 가수 청하, 그룹 온앤오프 효진이 출연해 이웅평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