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구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치며 사법부 불신의 원인을 인정하고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설득력 있는 재판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12·3 비상계엄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께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이같은 뜻을 밝혔다.
이 대법관은 이날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가장 필요한 시점에 적절하게 소통하면서 사법부가 어떤 판단과 의지를 가졌는지 잘 설명해야 한다. 법원이 말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점점 말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정치적 사건을 다룰 때 진영 논리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도 당부했다. 그는 "정치적 사건이 법원으로 몰려들수록 정치의 문법에서 벗어나 법원의 언어와 문법으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문법은 대체로 진보와 보수 등 진영의 구분과 대결,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른 사실의 재해석과 단순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며 "독립된 법원은 공정한 룰, 공존과 상호 존중, 사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탐구, 일관된 법리와 충실한 논증, 숙고와 숙의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을 향한 불신과 변화 요구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의 힘과 권위는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불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 그 원인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해소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국민의 불만이 불공정하거나 충실하지 못한 재판, 당사자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재판,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재판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법부가 아직 남아 있는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더욱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설득력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법왜곡죄 등 이른바 '사법 3법'에 대해선 "법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입법 과정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법원은 앞으로 어떤 국민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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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대법관의 퇴임으로 대법관 공석이 2명으로 늘면서 상고심 재판 지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청와대와 대법원 간 제청 갈등으로 지연되는 가운데 이 대법관의 후임인 김성수 후보자는 오는 14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이후 국회 임명 동의와 대통령 임명 절차까지 거쳐야 해 당분간 남은 대법관들의 사건 처리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공백 장기화를 막기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언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청와대는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주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 등으로 발표를 미뤘다.
이번 주 중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기존 추천 후보 중 다른 인물을 제청할지, 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할지에 따라 후임 인선 일정도 달라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내년 6월 퇴임할 때까지 제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