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대구 미국 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재심에서 무죄가 아닌 '면소'(형식적 종결)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도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3일 이 사건 피해자 박종덕씨·함종호씨 등 4명과 고(故) 우성수씨의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 삼덕동 미국문화원앞에 있던 가방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박씨 등은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기소됐다.
박씨는 국가보안법·반공법·집시법 위반 혐의, 함씨 등 4명은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법원은 1984년 1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박씨에게 징역 3년과 집행정지 3년, 함씨 등 4명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10년 박씨 등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이들은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9년 재심에서 박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법감금과 고문에 의한 자백 진술서 등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와 나머지 피해자들에게 적용된 집시법 위반 혐의엔 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조항이 폐지됐다는 이유로 실체 판단 없이 면소로 봤다.
이에 박씨 등은 2020년 8월 국가를 상대로 총 1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1월 1심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박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부분 수사와 재판, 형 집행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국가가 6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심 면소 판결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면소가 아니었다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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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재심 면소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법원은 국가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 내용과 증거 유무, 재심결정의 이유, 재심절차에서 무죄·면소판결이 선고된 경위 등을 종합해, 면소사유가 없었다면 무죄판결이 선고됐을 것이란 점에 관해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뤄진 경우에는 재심대상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으로 인한 손해에 관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일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가 지나 사라졌다고 판단한 부분도 뒤집었다. 앞서 원심은 재심 선고 시점이 아닌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 시점인 2010년 6월을 기준으로 3년 내 소송을 내지 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재심 면소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들로서는 재심을 통해 유죄 판결의 확정력이 배제돼야 비로소 수사에서부터 공소의 제기, 유죄판결 선고와 확정, 형의 집행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국가의 불법행위 및 그에 따른 손해라고 평가해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