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만든 음악이 제가 만든 어떤 음악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 빅나티는 지난달 12일 팟캐스트 '하이어튼간'에서 AI 음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평소 AI 제작곡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밴드 무소치의 노래를 듣고는 "벽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함께 출연한 래퍼 pH-1도 카페에서 듣고 반한 노래가 AI 제작곡이었다고 고백했다. 가수에게 직접 작곡하고 부른 노래인지 물었다가 AI로 만들었다는 답을 들었다는 그는 "이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진심으로 좋았다"고 말했다.
AI 음악은 음원차트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지난 2일 오전 8시 기준 멜론 '톱100'에서 18위를 기록했다. 머무르는 음원 소개에서 기획과 작사, 전체 프로듀싱은 직접 맡았고 보컬은 생성형 음악 서비스 수노(Suno)로 구현했다고 밝혔다. 사람이 작사하고 AI가 부른 노래가 대중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
AI의 침투…인디 음악가들은 '착잡'

수노 같은 서비스는 음악 제작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원하는 장르와 분위기를 프롬프트로 입력하면 보컬과 반주가 포함된 음악이 만들어진다. 직접 쓴 가사를 넣거나 생성된 결과물을 수정할 수도 있다. 유료 구독자에게는 일정 조건 아래 음원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한도 주어진다.
녹음실에서는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정식 녹음에 앞서 노래의 멜로디와 표현 방식을 들려주는 '가이드 보컬'이 대표적이다.
인디밴드 406호 프로젝트의 보컬 김은지는 "AI 도입 이후 가이드 보컬을 거의 쓰지 않게 됐다"며 "사람의 목소리로는 수십 번 녹음해야 나오는 퀄리티가 AI로는 한 번에 구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이드 보컬로 생계를 유지하던 친구들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지 역시 편곡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모든 멜로디 라인을 AI에게 맡기진 않지만, 편곡을 할 때는 많이 사용한다"며 "기본 뼈대를 내가 만들고, AI로 다양하게 편곡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은 편리해졌지만 인디 음악가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김은지는 인디 음원을 알리는 통로였던 플레이리스트에도 AI 음악이 늘면서 홍보가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그는 "저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너무 남용하는 사례들을 보면 조금 착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바뀌는 교육 현장, 서울예대도 AI 활용

음악 교육 현장도 AI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는 2027학년도 실용음악전공 전자음악·DJ 분야 지원자가 정해진 지침에 따라 자작곡 제작에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노와 협업한 정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작곡·연주한 음악을 AI로 확장·보완해 18곡을 담은 프로젝트 앨범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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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팔달구 뮤제아실용음악학원 전혜아 원장은 수강생 상당수가 AI를 활용한 작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작곡을 배우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었지만, 이제는 AI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전 원장은 기초 작곡법을 먼저 가르친 뒤 AI 활용법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그는 "AI를 잘 활용하려면 작곡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AI가 만든 음악도 기존 곡과의 유사성이나 어색한 멜로디 연결 등을 사람이 판단하고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I 작곡, 돈이 될까

AI로 만든 음악도 음원사이트에 유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상업적 이용 권한을 확보하고 유통사와 플랫폼의 기준을 충족하면 계약에 따라 수익을 정산받는다.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21일 확인한 공개 기록상 멜론과 지니에서 누적 약 1424만회 재생됐다. 재생당 제작자 몫을 3원으로 가정하면 유통 수입은 약 4270만원으로 계산된다. 이는 유통 수수료와 제작비·세금 등을 빼기 전 추산액으로, 실제 정산액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AI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작사·작곡 저작권이나 가수·연주자에게 주어지는 실연자의 권리까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음반 제작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책임진 주체가 받는 제작자 몫의 수익은 작사·작곡 저작권료와 별개다. AI 음악도 음반 제작자의 저작인접권이 인정되면 유통 계약에 따라 제작자 몫을 정산받을 수 있다.
작사·작곡 저작권이 성립하려면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어야 한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보호한다. 단순히 프롬프트를 입력하거나 AI가 생성한 여러 곡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는 사정만으로 이용자에게 그 곡의 작사·작곡 저작권이 생기지는 않는다.
AI가 곡을 붙였더라도 사람이 직접 쓴 창작성 있는 가사는 별도로 보호받을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AI 활용 저작물 가운데 인간이 창작한 부분을 구분해 등록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다만 사용료 징수와 분배를 맡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현재 AI 활용 음악의 신탁 등록을 보류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창작한 부분에 저작권이 성립하더라도 한음저협을 통한 저작권료 정산은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음악가들은 음원 공급이 급증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우려한다. 빅나티는 AI로 음악 제작이 쉬워진 만큼 음원사이트에 등록되는 곡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그렇게 공급이 쏠리면 음악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