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4일 잠실 두산-한화전. 1회초 한화 공격 무사 2루에서 노시환의 타구가 포수 뒤 파울 지역으로 높이 떠올랐다. 두산 포수 윤준호는 3루 더그아웃 입구 바로 앞까지 달려가 공을 잡아냈다. 하마터면 더그아웃 설치물에 부딪히거나 안으로 넘어질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이때 TV 중계화면에는 상대팀 한화의 김경문 감독이 팔을 내밀어 윤준호를 보호하려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이튿날인 5일 수원 경기에서도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7회초 1사 후 삼성 김영웅의 땅볼이 KT 1루수 김현수의 미트에 맞고 흐르자 2루수 김상수가 잡아냈고, 김영웅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이때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 김상수의 송구를 잡은 투수 김민수는 김영웅을 밟지 않도록 껑충 뛰어오르다 중심을 잃고 몸을 굴렀다. 김영웅은 곧바로 김민수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고, 김민수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투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KBO리그에 연일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동업자 정신'을 잊지 않는 '리스펙트(respect·존중)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몸에 맞는 볼을 던진 뒤 투수가 모자를 벗고 타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이미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과거 팬들 사이에 "승부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이 일었고, 몇몇 외국인 투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외국인 선수들조차 따라하는 관례가 됐다.


심지어 국제대회에서도 그랬다. 지난 해 11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5 K-베이스볼 시리즈 체코와 경기에서 대표팀 투수 곽빈(두산)은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모자를 벗어 타자에게 인사를 했다. 이에 대해 파벨 하빔 체코 감독은 경기 후 "그런 문화를 존중하고 강하게 지지한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달 31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KT전에서도 5회초 KT 허경민이 얼굴 쪽에 투구를 맞고 쓰러지자 한화 투수 엄상백은 타석까지 다가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켜봤다. 한동안 누워 있던 허경민은 일어서자마자 엄상백의 팔을 두드리며 오히려 후배 투수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한 구단의 감독은 전날 몸에 맞는 볼로 교체된 타자에 대해 "타격감이 좋았는데 놀라셨겠다"고 묻자 "그걸 떠나서 선수가 다칠까 봐 놀랐죠. 말을 정 떨어지게 하네요"며 농담조로 말해 취재진의 웃음을 자아냈다. 승부도 승부이지만, 사람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페어 플레이는 스포츠의 기본 정신이자 팬들에게 승리보다도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01년부터 매년 페어플레이상을 선정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함께 수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치열한 승부를 잠시 잊고 미소를 머금게 하는 '리스펙트 문화'가 KBO리그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