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향년 83세의 나이로 지난 15일 별세한 데 이어 또 비보가 전해졌다. '토미 존 수술'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토미 존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향년 83세.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 등 외신은 16일(현지 시각) "존이 지난 15일 밤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존은 최근 방광암이 재발해 건강이 크게 악화됐고,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었다.
존의 친정팀이자 현역 시절 가장 오랫동안 몸담았던 뉴욕 양키스는 최근 구단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존의 친필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존은 편지를 통해 "26년의 선수 생활하는 동안 나를 지켜봐 준 팬들과 친구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준 양키스 구단과 스타인브레너 가문에 깊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어 "내 팔을 살려내 마운드에서 계속 공을 던질 수 있게 해주고, 수많은 투수가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고(故)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며 진심을 전했다.

양키스 구단은 존이 세상을 떠난 이날 구단 성명을 통해 "양키스는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던 시절 로테이션의 주축이자, 오랜 기간 양키스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의 별세를 애도한다"고 밝혔다.
이어 " 그는 놀랍도록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 또 수술 후 업적을 이루면서, 수많은 운동선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로 인해 2시즌 연속 20승 등 양키스에서 달성한 투수로서 재능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기도 했다"면서 "우리는 스포츠 의학의 개척자로서 남긴 그의 모든 유산을 기억할 것"이라 전했다.
스탠 카스텐 LA 다저스 사장 겸 CEO는 성명을 통해 "오늘 토미 존의 부고를 접하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내내 뛰어난 투수였다. 그가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수술을 처음으로 받은 용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그가 남긴 영향력은 모든 연령대의 야구 선수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세대를 포함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지난 1963년 빅리그에 데뷔한 존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 6개 구단에서 1989년까지 무려 26시즌 동안 활약한 전설적인 좌완 투수다. 빅리그 통산 760경기에 등판해 4710⅓이닝을 소화하며 288승 231패, 평균자책점 3.34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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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야구 역사에 독보적인 이정표를 남길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1974년 당시 다저스 소속이던 그는 왼쪽 팔꿈치 안쪽 측부인대가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 시절 투수에게 인대 파열은 사실상 은퇴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때 다저스의 팀 닥터였던 프랭크 조브 박사가 몸의 다른 부위에서 떼어낸 건으로 손상된 인대를 대체하는 이식 수술을 세계 최초로 시도, 성공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야구계에서 대명사처럼 쓰이는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의 시작이었다.
존은 약 18개월간 고된 재활을 견뎌내고 1976년 마운드에 복귀,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수술 전 12시즌 동안 124승(106패)을 거뒀던 그는 복귀 후 은퇴할 때까지 14시즌 동안 164승(125패)을 추가로 올리는 기적을 썼다. 복귀 후 5년 연속 200이닝을 돌파했고, 1977년에는 데뷔 첫 20승 고지를 밟았다. 결국 46세가 되던 1989년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며 마운드를 지배했다.
존의 마지막 빅리그 등판 날짜는 1989년 5월 25일. 당시 그는 뉴욕에서 에인절스를 상대로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채 공을 던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상대한 타자인 외야수 데본 화이트는 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당시 8개월 된 아기였다.
스포츠계에 불멸의 유산을 남긴 조브 박사는 지난 2014년 타계했다. 그리고 존도 2026년 8월 16일 그의 곁으로 영원히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