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대구, 손찬익 기자] “이제야 했다. 입단 때 약속을 늦게 지킨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있다. 그래도 한 게 어딘가”.
2019년 프로 데뷔 당시 삼성 왕조의 재건을 다짐했던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이 마침내 그 약속을 지켰다. 7년의 기다림 끝에 맛본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 마지막 승부에서 팔이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지친 상태였지만 이를 악물고 마운드를 지켰다. 오랜 시간 꿈꿔온 순간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했다.
삼성은 8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12-1로 승리했다.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2014년 이후 12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올가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마운드를 지킨 원태인은 이날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우승을 확정한 마지막 경기에서 데일리 MVP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원태인은 “많은 아픔이 있었다. 타이브레이크를 비롯해 2년 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도 실패했던 기억이 있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우승을 결정짓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미디어데이 때도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 팬들과 약속을 지켜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으로 향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규 시즌 막판 KT에 당한 3연패는 선수단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그 아픔은 오히려 가을 무대를 준비하는 원동력이 됐다.
원태인은 “KT를 상대로 올 시즌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마지막 3연전을 너무 무기력하게 내줬다. 그 경기로 선수들이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다. 마지막 3연전 3연패가 선수들의 가슴을 울렸다”며 “서로 ‘올라가서 꼭 설욕하자’고 이야기했다. 강팀 KIA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오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업셋까지 이뤄냈다”고 돌아봤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마지막 등판도 결코 쉽지 않았다. 가을 내내 선발과 구원을 오간 탓에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했다. 원태인은 당시 몸 상태를 떠올리며 힘겨웠던 순간을 털어놓았다.
그는 “너무 힘들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픈 게 아니라 팔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던지는 느낌이었다. 팔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지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3회가 되니까 팔이 말을 듣지 않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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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원태인이 의지한 건 포수 강민호였다.
“민호 형의 미트만 보고 열심히 던졌다. 올해 너무 힘든 시즌이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내가 부진한 것도 있었지만 가을에 얼마나 잘하려고 액땜하나 싶었다. 민호 형이 ‘가을은 원태인’이라고 해줬다. 5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는 생각으로, 우승하자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던졌다”.
그렇게 버틴 5이닝은 삼성의 우승을 완성하는 든든한 발판이 됐다. 동료들이 타석에서 힘을 보탰고, 원태인은 승리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원태인에게 이번 우승은 특별했다. 프로에 입단하며 팬들에게 했던 약속을 비로소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우승을 너무 하고 싶었고 참 많이 부러웠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정말 지금이라도 한 게 너무 다행이다”고 웃었다.
이어 “왕조라는 건 삼성이 2010년대 초반 우승이 당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가 그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제 원태인 앞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그는 삼성 잔류와 해외 진출 가능성을 두고 향후 행보를 결정해야 한다. 박진만 감독은 에이스의 잔류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원태인은 FA 계약과 관련해 “미묘한 질문인데 포스트시즌 전에 사장님께서 우승만 하라고 하셨다. 돈은 사장님께서 다 주신다고 하셨다. 우승을 시켜드렸으니 아마 좋은 계약서를 들고 와주시지 않을까 싶다”고 재치 있게 대답했다.
해외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올 시즌 너무 부족해서 시즌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해외 에이전트를 이미 선임해둔 상태다. 부진한 상황에서 여론이 안 좋아질까 봐 발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사는 (김)지찬이가 보내줘서 봤는데 금시초문이었다. 이번 가을야구는 매 경기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FA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건 에이전트에게 일임해둔 상태다. 내일쯤 한 번 전화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민호도 후배의 잔류를 바랐다. 그는 원태인에게 “우승 보너스도 많을 텐데 받고 삼성에 남아라”고 농담 섞인 당부를 건넸다.
이에 원태인은 “우승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장님만 믿고 있다. 언제 만나자고 하실지 궁금하다. 그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민호 형이 내가 FA 때마다 몸값을 많이 올려주기도 했다. 민호 형도 믿고 사장님도 믿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7년 전 삼성 왕조의 재건을 약속했던 신인은 이제 우승을 이끈 에이스가 됐다. 원태인이 바라보는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어렵게 되찾은 정상의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삼성 왕조의 출발점은 바로 이번 우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