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대러 제재 실효성 논란과 유럽의 딜레마
![[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정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한 원유 생산이 한 달 이내에 멈출 위험이 있다"며 "러시아는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자"라고 말했다. 2026.03.10. /사진=민경찬](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11/2026110611023742935_1.jpg)
유럽의 대러 제재가 딜레마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줄이고 제재를 강화해 왔지만, 잇따른 예외조치로 실효성 논란이 커졌다. 장기계약에 따른 부담과 대체 에너지 전환 비용, 서방의 제재 공조 균열까지 겹치면서 제재를 지속하는 데 따른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대러 제재에 대한 유럽의 딜레마를 살펴봤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 활용 원유 수출…제재 예외조치도 제재 실효성 논란 키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는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주요 외화 수입원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제재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에너지 거래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가 유럽에서 중국과 인도 등으로 판매처를 돌리고, '그림자 선단'을 활용해 해상 운송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림자 선단은 소유와 보험관계를 불투명하게 운영해 제재를 우회하는 데 사용되는 유조선 집단을 가리킨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전쟁 4년 차(2025년 2월 24일~2026년 2월 23일)에 러시아 원유 수출량은 2억 1500만 톤으로 전쟁 이전보다 약 6% 늘었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EU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은 45%, 원유는 26%에 달했지만, 2025년에 각각 12%와 2.2%로 감소했다. 그러나 일부 회원국의 에너지 거래는 지속됐고 인도, 튀르키예 등 제3국을 통한 러시아산 석유제품 수입도 계속됐다. CERA의 조사에 의하면 EU는 지난 9월에도 약 17억 유로(약 2조 5600억원)의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등을 수입했다.
특히 일부 국가들은 제재 예외조치를 통해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EU는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에 대해 러시아 원유 수입의 예외를 인정했고, 러시아산 가스 장기계약도 수입금지 기한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지난 5월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제3국에서 정제한 경유·항공유의 수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로 인해 제재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해 충돌도 이어진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전면 차단해야 러시아의 군비 확충을 막고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은 공급처 전환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다. 헝가리는 해당 조치가 회원국의 에너지 선택 권한을 침해한다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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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학과 교수는 "유럽은 2027년까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제로(0)'로 낮추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며 "대러 제재는 해상 원유 수입을 금지하면서도 일부 파이프라인 원유 수입 예외를 인정하고 제3국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도 여전히 수입하고 있어서 유럽의 제재 의지는 강하지만 실효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계약·에너지 전환·공조 균열도 난제
유럽의 대러 제재가 지닌 난제 중 하나는 장기계약 문제다. EU는 기존 장기계약에 대해서 러시아산 LNG 수입을 2027년 1월 1일부터, 파이프라인 가스는 원칙적으로 2027년 9월 30일부터 금지할 예정이다. 그러나 스페인·독일·프랑스 등의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2040년 전후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산 LNG 장기 공급계약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예정대로 수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게 되면 계약해지에 따른 법적, 경제적 책임을 떠안게 된다.
일부 기업들이 계약 물량을 제3국에 재판매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재판매가 가능해져도 유럽 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은 막을 수 있지만, 러시아에 대한 대금 지급은 지속된다. 제재 효과가 러시아의 자금줄 차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제3국 재판매가 모든 계약에서 허용되는 것도 아니며, 계약위반 여부나 재판매에 따른 수익성도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 결국 러시아와의 에너지 관계를 정치적으로 단절하려는 유럽의 목표와 기존 상업계약의 법적 구속력이 충돌하는 셈이다.
대체 에너지로의 전환 비용도 유럽에게 큰 부담이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을 줄이기 위해 LNG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재생에너지와 원전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에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망 확충, 전력저장시설 구축,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를 위한 비용도 늘어난다. 원자력 발전도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긴 건설기간과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 안전성,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의 과제가 남는다. EU 집행위원회는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신규 대형 원전 건설에 2050년까지 약 2410억 유로(약 364조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서방 세계에서 미국의 독자 행동으로 인한 대러 제재 공조의 균열도 딜레마를 키우는 원인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러시아 상품에 대한 500% 추가 관세와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주요 구매국에 대한 100% 추가 관세 등을 규정한 '그레이엄 제재법' 적용을 면제했다. 미국의 국익과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평화협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약 480만 톤의 경유를 미국과 국제시장에 공급할 것을 합의했고, 미 재무부는 러시아산 경유 거래와 미국 내 수입에 대한 제재를 내년 4월까지 유예했다. 독일과 프랑스 지도자들은 미국의 러시아산 경유 도입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최근 치러진 중간선거에 앞서 급등한 경유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앞섰다. 대러 압박을 유지하려는 유럽과 자국의 에너지 수급이 우선인 미국 사이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석학교수는 "에너지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에너지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유럽 경제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며 "결국 유럽 스스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제재 완화 조치나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비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재 북러 관계가 제도화되는 단계에서 아무런 외교적 레버리지를 갖지 못한 채 방치한다면 향후 더 큰 안보 위협으로 돌아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며 "북극항로나 석유제품 수출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유럽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당국간 협상을 통해 제재 위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