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행자 우위의 채권시장

[기고] 발행자 우위의 채권시장

김일구
2002.07.12 14:09

[기고] 발행자 우위의 채권시장

[편집자주] 김일구 굿모닝증권 수석연구원

채권투자 수입에는 두가지가 있다. 발행자가 주는 이자수입과 유통시장에서 금리가 변화할 때 생기는 자본이득 혹은 자본손실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수입원천은 채권의 발행자와 투자자 사이에 묘한 역학관계를 만들어 낸다.

채권 유통시장이 발전하지 못한 경제에서 채권투자자의 수입은 대부분 이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발행자로부터 더 많은 이자를 받아내려는 유인을 갖게 되고, 시장금리가 높게 형성된다. 유통시장이 발전하더라도 투자자가 발행자로부터 더 많은 이자를 받아내려는 유인은 존재하겠지만, 이것과 상충되는 또 하나의 유인이 생긴다. 바로 유통시장에서 금리를 낮추어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유인이 그것이다.

유통시장이 발전하면서 채권투자자들은 서로 상충되는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유통시장이 발전하지 못한 경제에서 나타나는 발행자에 대한 투자자의 일방적인 우위라는 역학관계를 다소 바꾸게 된다. 때로는 투자자들이 금리가 낮아지면서 생기는 자본이득에 열중하여 발행자가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자자들 사이에 금리가 높아져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생기면서 발행자가 높은 금리의 채권을 발행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 발행자와 투자자 사이의 역학관계 변화를 살펴보자. 2000년 하반기부터 시행된 채권시가평가제를 전후하여 채권 유통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자본이득에 눈을 뜨게 되었다. 때마침 세계경제가 둔화되면서 펀더멘털도 금리하락쪽으로 작용하는 중이었기에 투자자들은 지난해 가을까지 시장금리를 낮추는데 열중했다. 외환위기 이전에 회사채금리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값과 거의 같았다. 그러나 시가평가를 전후해서 회사채금리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값을 밑돌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시장금리가 지나치게 낮아졌다고 주장했지만, 유통시장이 발전하면서 투자자와 발행자 사이의 역학관계가 변한 것이 금리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3/4분기를 기점으로 경기가 회복되면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채권시장에는 또 한번의 변화가 나타났다. 시간이 갈수록 경기회복이 분명해지자 채권투자자들은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편입채권의 듀레이션을 절반 이하로 낮추었다. 채권시장에는 금리가 올라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고, 투자자들의 일차적인 관심도 발행자로부터 높은 금리를 받아내는데 두어졌다.

그러나 최근 투자자와 발행자의 역학관계는 또다시 변하고 있다. 펀더멘털이 좋아지면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고 채권도 많이 발행하게 되는 법인데, 최근 기업은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데다가 투자도 별로 늘리지 않고 있다. 투자자는 발행자로부터 더 많은 이자를 받아낼 준비를 해놓았지만 발행자는 느긋하다. 현금이 많고 투자도 하지 않는데 많은 이자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어도 최근 채권금리가 급락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학관계의 변화에 기인한다.

투자자에 대한 발행자의 우위라는 최근의 채권시장 역학관계는 더 강화될 것 같다. 신용등급 상승과 내외금리차로 발행자는 국내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것과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의 손익을 따져보고 있다. 원화강세가 계속된다면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의 원화환산 금리는 콜금리보다도 더 낮아질 수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발행자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투자자의 힘은 더 약해질 위험이 있다. 해외투자가들이 원화강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낮은 금리로 달러화를 차입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의 원화 채권에 투자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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