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회계는 회개하라
엔론, 타이코, 제록스, GE, 월드컴 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 우량회사로 시장에서 평가받던 회사들이다. 그러나 회계부정 사건이 보도되면서 이들 회사의 주가는 폭락하였고, 심지어 파산의 길을 걷게 된 기업들도 생겨났다. 회계부정 사건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자본시장이 태동하기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꼬리를 물고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다양한 처방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가장 투명하고 선진 지배구조를 지녔다고 알려진 미국 자본시장에서조차 구멍이 뚫렸다. 미국의 회계기준과 지배구조는 투명경영을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충격은 미국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시장이 발달할수록 투명경영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한층 더 강해진다.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시 재무적 성과보다 기업의 투명성을 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투명한 기업의 주식은 프리미엄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할 정도이다. 이처럼 투명경영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기업의 생사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투명경영은 기업의 상황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회계이다. 회계는 기업의 경영상태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회계정보로 만들어내고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한다. 정해진 규칙을 위반하는 회계정보를 생산하는 것을 부실회계, 회계부정이라 한다. 회계부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가공할 만하다. 회계정보를 먹고 사는 자본시장에 독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회계는 회개하라’라는 유행어가 생겨날 법도 하다.
회계부정을 유인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주주와 경영자, 즉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리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경영자는 주주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업을 수행한다. 주주는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인센티브 혹은 모니터링 기능을 도입한다. 인센티브는 경영자가 자발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경영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고, 모니터링 기능은 지배구조로 대표되는 내외부 감사, 이사회 등 경영자의 경영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인센티브를 도입하더라도 경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회계부정은 발생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면 회계부정의 유인은 커지게 된다. 스톡옵션이 회계부정의 주범으로 간주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경영자는 지배구조가 취약한 틈을 타 주가상승을 위한 회계부정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회계는 기업의 얼굴이라고 한다. 인체의 컨디션이 얼굴에 가장 잘 표현되듯이 기업의 상태는 회계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몸의 컨디션은 표정관리를 통해 순간적으로는 감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기업의 경영상태를 왜곡시키는 회계부정도 반드시 오래가지 못한다. 경영자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단기성과 중심의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아직도`회계는 회개하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회계가 회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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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대리인 문제 차원에서 회계부정의 유인을 제거하여야 한다. 투명경영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투명경영이야말로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주주와 경영자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