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동성위험 불감증

[기고]유동성위험 불감증

2002.11.01 12:43

[기고]유동성위험 불감증

[편집자주] 윤영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

가계부실에 대한 우려가 신용카드사의 발목을 잡았다. 연체율 상승과 기업실적 하락에 시장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카드사의 주가는 수직 낙하했고, 채권시장에서는 거래가 급격히 위축되더니 급기야는 일부 종목에서 투매까지 나타났다. 시가주의 환경에서 가격 변동은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이지만, 거래량의 위축은 이러한 조정장치에 이상이 있음을 의미한다.

연체율 상승이나 실적악화보다 카드사에 주어지는 더 큰 위협은 카드사의 자금조달경로에 대한 불안감이다. 여신전문금융인 우리나라 카드사들은 소요자금의 대부분을 차입을 통해 조달한다. 그런데 카드사들은 자금조달을 채권발행을 통한 장기자금보다는 은행이나 기업어음(CP)시장을 통한 단기자금에 너무 크게 의존해 왔다. 무엇보다도 낮은 금리의 유혹이 컸다. 이에 따라 원천적인 '자금의 재조달(re-financing) 위험'에 더욱 크게 노출되었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작았다. 금융시장의 단기화 현상으로 카드사의 단기자금 조달에 더할 나위 없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AA의 신용등급은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

그러나 부동산과열 대책이 가계부실 우려로 이어지고, 은행이 가계대출에 부담을 느끼면서 본질적으로 '한 바구니의 계란'인 카드사에 대한 자금공급을 줄이게 됐다.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위기의 속성이다. 연체율 상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정적 뉴스가 줄을 이었다. 이렇게 되면 참여자 모두 여유가 없어져서 금융시장 사이의 보완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유동성 경색의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경우 새로운 가격균형을 찾기까지 상당기간 고통스러운 긴장이 불가피하지만, 환경변화에 대한 인식부족과 신용평가의 신중함은 이를 더욱 더디게 하고 있다.

과도한 단기자금 의존은 역대의 유동성 위기와 관련하여 빠지지 않는 테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위험에 대한 사회적 규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는 양질의 서비스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사회적인 위험관리 실패는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는다.

유동성 위험에 대한 불감증은 비단 신용카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회사채 발행업체의 상당수도 유사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견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축소된 신용스프레드도 수급의 결과라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에 대한 지나친 낙관을 반영한다. 유동성위험에 가장 취약한 CP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보투명성은 낮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기본적 장치인 '유동성보장약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도 다르지 않다. 무디스 등은 최근 유동성위험에 대한 분석을 크게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 금융여건에서 유동성 위험에 대한 신용평가의 접근은 극히 제한적이다. 최근의 회사채 시장 위축은 상당부분 이러한 유동성위험 불감증에 연유한다.

연체율 상승은 머지 않아 서서히 소강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최근의 연체율 급등은 성장률 둔화에 따른 기조적 흐름과 함께 제도변화에 따른 일시적 조정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카드사들도 결제일 변경이나 대환과 같은 연체율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도 연체율 하락에 일조할 전망이다. 연체율 상승이 소강국면에 접어들면 시장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유동성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시스템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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