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칸막이식 금융법' 바꾸자
규제개혁위원회 자료를 보면 1998년 8월부터 지금까지 금융통화 부분에서 규제 437건이 폐지된 것으로 되어 있다. 정부는 열심히 규제완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금융규제가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까.
우리의 금융법 체제는 기본적으로 칸막이 식의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은행은 증권과 다르고 이들은 보험과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나 금융의 통합현상은 이러한 칸막이를 해소하는 작업인데 우리의 금융법은 칸막이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법 체제 아래서의 규제완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규제는 법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완화되기 어렵다.
현재 재정경제부에서 관리하는 금융법은 42개나 된다. 칸막이 식의 틀 때문에 그 수가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법이 고쳐졌기 때문에 여러 법간에 일관성도 매우 부족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나라에서 법에 의해 구분되는 금융기관의 수는 15개나 된다. 이들의 설립요건이나 절차가 거의 다 다르다. 민간의 입장에서 보면 투명할 수가 없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설립요건을 완화하려고 한다면 관련 법 모두를 한번에 똑같이 고쳐야 좋다. 하지만 법 하나를 고치는 일이 쉽지 않다. 법률 개정안을 만든 후 관계부처 협의,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의, 국무회의 의결, 국회 제출, 상임위와 법사위 심의, 그리고 본 회의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절차가 어렵기 때문에 관련법 모두를 동시에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때그때 가장 개정이 필요한 몇 개 법만을 고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규제나 감독 수준이 금융기관마다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똑같은 법 위반 행위를 하더라도 금융기관마다 처벌의 수위가 상이한 결과가 이렇게 해서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금융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규제와 감독의 불투명성은 금융법 체제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 금융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업무영역이 소위 네가티브 시스템으로 되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현재 우리 법은 금융기관에서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법령에 열거되어 있는 소위 포지티브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금융기관들이 새롭게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법령에서는 금지해야 할 사항만을 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네가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한다 해도 현재의 법체제 아래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꺼번에 관련 법을 모두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칸막이식 법체제 아래서는 은행, 증권, 보험 등을 결합한 복합금융신상품을 개발하기 어려워 국제적으로 금융은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앞으로 4~5년에 걸쳐 금융법 체계를 금융기관 중심에서 기능별로 전면 개편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은행법, 보험법 등은 없어지고 금융기관 설립과 업무영역에 관한 법, 자산운용 등 감독에 관한 법, 금융거래에 관한 법, 퇴출 및 구조개선에 관한 법 등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전 금융기관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 일관성 있는 규율체계도 갖게 될 것이다. 네가티브 시스템으로의 이행도 가능하고 규제완화의 효과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금융법 체제를 기능별로 바꾸는 일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늦지 않게 꼭 해야 한다. 다행이 영국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경험이 있다. 영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하면 수년 내에 우리는 이를 완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국제 금융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