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광화문]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박형기 국제부장
2003.04.24 12:50

[광화문]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간 거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맥없이 무너진 9일(현지시간), 머니투데이 한 편집부원의 촌평이다.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패러디 한 그의 재치가 돋보인다. 싱아 대신 공화국 수비대를 대입하면 된다.

이라크전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가 10만 명에 이른다는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의 향방이다. 한때 장기전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고, 그 배경에는 공화국 수비대가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각종 설이 나돌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가설이다. 르몽드는 지난 15일 공화국 수비대의 지휘를 맡았던 마헤르 수피안 사령관이 전투에 앞서 신변 보호를 조건으로 미군에 투항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군의 아파치 헬기를 타고 모처로 피신하는 한편 부하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해산할 것을 명령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실제 수피안 사령관은 미군이 공개 수배한 이라크 핵심 지도부 55명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르몽드의 가설에 설득력을 더해 주고 있다.

개전 초기 대부분 단기전을 예상했지만 이슬람이란 종교적 유대가 있기 때문에 미군이 고전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정권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망했다. 24년간 후세인 독재 치하에 시달린 국민들이 결정적 순간에 후세인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재체제는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증명한 전형적인 사례다.

마치 유신정권 시절, 미국이 독재정권을 끝장낸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했다는 '역사적 가정'을 한다면, 한국에서도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고 그들의 편에 섰을 시민이 있었을 것이다. 외세에 의존하지만 독재타도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대표 논객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갈파했듯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고 이를 지탱하는 시장경제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다. 이제 200년(명예혁명을 기준으로) 남짓한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종교가 1500년 된 이슬람을 무너트렸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일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노무현이란 자격미달(?)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것만 보아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눈부시다.

이제 남은 것은 시장경제체제의 완성이다. 97년 IMF 이후 일부 진척이 있었지만 아직도 '관치금융'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SK사태가 빌생했을 때, 일부에서는 이라크전 북핵위기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정부가 이 같은 사건을 터트려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현정권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한편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SK사태가 터진지 한달, 물론 이라크전이 조기종전 된 영향이 가장 크지만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개혁에는 찬성이지만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던, 그 많던 '속도조절론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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