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국 경제 '저글링 쇼'
낙마한 김우중 대우회장이 잘 나갈 때 그는 정말 `저글링'(juggling)의 마술사 같았다. 그는 두 손(적은 자본)으로 수십개의 공(많은 사업)을 돌렸지만 결코 떨어드리는 일이 없었다. 현란한 그 손놀림에 반해 그를 흉내낸 `리틀 김우중'이 잇따랐다. 하지만 얼마 못가 모두 공을 떨어뜨리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끝까지 살아남은 김 회장이 마지막 쇼를 할 때 관객들은 감탄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 아슬아슬한 곡예에 마음을 조렸다. 김 회장은 IMF 한파가 거센 와중인데도 쌍용차를 인수하고 해외사업장을 수도 없이 늘렸다. 그리곤 더 이상 저글링을 멈출 수 없는 숨가뿐 상태로 치달았고,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아차하면 수십개 공이 일순간에 떨어져 한국경제를 사지로 몰아넣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동원한 대책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규제였다. 정부는 대우가 마구잡이로 발행해 시장에 쏟아내는 채권에 제동을 걸기 위해 금융기관에 특별 지침를 내렸다. 5대 재벌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일정 수준 이상 사들이지 못하도록 선을 그은 것이다.
회사채와 CP를 이용해 시중자금을 휩쓸어가던 대우는 난감했다. 회사채 발행 규제방침이 나온 1998년 10월 대우의 회사채 발행잔액은 17조원을 넘었다. 이는 단일 그룹으로서는 사상 최대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자기자본이 1조원이었으나 갚아야 할 회사채가 3조2000억원이나 됐다.대우전자(현대 대우일렉트로닉스)도 미상환 회사채가 2조3400억원으로 자기자본 8100억원의 2.9배에 달했다.
이 빚더미가 한국경제를 쑥밭으로 만든 대우사태의 뇌관이 됐다. 김우중 회장은 나중에 "정부가 돈줄만 막지 않았다면 대우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탕냉탕식 정부대책을 질타한 것이라면 일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흔드는 바람에 공이 떨어졌다"는 김 회장의 변명에 공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무분별한 차입경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IMF 사태에 이어 대우사태에서 또 한번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 지금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신용위기'는 `제2의 대우사태'와 다를 바 없다. 위기에 몰리는 과정도 대우를 쏙 빼어 닮은 `판박이'다. 지난해 카드사들이 회원증대를 위해 연출한 `저글링 쇼'는 화려했다.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저인망식으로 회원을 긁어 모았고, 주유소-극장-백화점-패밀리레스토랑 등 이곳저곳에 엄청난 지원금을 뿌렸다. 그야말로 시간장소, 남녀노소 불문이었다. 영업자금은 회사채와 CP를 남발해 충당했다. 지난해 카드사들이 발행한 카드채는 17조9000억원으로 금융채(24조6000억원)의 4분의3 가량을 독식했다. 최근 금융시장을 뒤흔든 `카드채 대란'은 이렇게 잉태됐다.
카드사만 탓할 일도 아니다. 정부는 카드 세제혜택, 카드영수증 복권제 등 갖가지 수법으로 `저글링 쇼'를 부추겼다. 그러다 갑자기 영업 규제로 돌변했다. 일반 개인들도 분수를 모른 채 카드를 긁어댔다. 이를 두고 얼마전 한 외신은 한국경제는 `카드로 만든 집'이라고 꼬집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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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늘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100조원 이상의 빚(공적자금) 위에서 경제를 굴리고 있다. 그것이 IMF 사태 전에 나라를 옥죄던 `외채망국론'과 뭐가 얼마나 다른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