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김정태 그만 흔들자"
한국 사회에는 존경받는 원로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금융계에는 존경받는 CEO는 커녕 성공한 CEO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경영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은행장이 나타나도 정권이 바뀌고 사정 바람이 불면 예외없이 대출비리 등에 휘말려 중도하차 하곤 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CEO는 존경은 커녕 부실경영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에서는 개인재산을 압류당하는 일이 두려워 은행장이나 임원 승진을 기피하기까지 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성공한 은행장, 존경받는 CEO에 목말라 있던 금융계에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는 은행들이 정부 지시에 의해 자금배분 기능을 담당하던 금고 역할에서 벗어나 수익성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변화는 데 기여했다. 선진사회 경영자의 상징어가 된 스톡옵션과 기부문화를 우리사회에 정착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그런 '장삿꾼'스타 CEO 김정태 행장이 요즘 코너에 몰려 있다. 지난 대선 때 '줄'을 잘못 섰다는 이상한 풍문에 휩싸이면서 퇴진설에 시달리고 있다. 은행장이 흔들리니까 주가도 연일 하락하고 있다.
신용카드 가계대출 부실화로 올 1분기 국민은행의 순익이 지난해 동기대비 90%가까이 감소한 것도 김정태 행장을 흔드는 요인이다.육체적 과로와 심리적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다 보니 급성폐렴 증세로 입원까지 하고 말았다.
김정태 행장이 성공한 은행장, 존경받는 CEO로서 금융사에 남으려면 무엇보다 악화된 실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일은 김 행장 스스로의 몫이며 그는 지금 자회사 노조의 퇴진 압력을 받으면서까지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정부당국도 은행장을 교체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현직 은행장들의 경우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 조차 DJ정부가 임명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태 행장도 이 점에서 완전 자유롭진 못하다. 그러다 보니 새 정부 입장에서는 은행장들을 바꾸고 싶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특히 우리 금융산업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금융계 내부의 투서와 흠집내기로 부메랑이 돼 금융권을 괴롭히고 있다. 감사원이나 금융당국은 이 점을 참고해야 한다.
존경받는 CEO, 성공한 은행장을 기다리는 것은 특정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성공한 CEO, 존경받는 은행장이 곧 선진 금융업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존경받는 금융 CEO를 몇명쯤 가질만하다.
내년 10월 통합 국민은행장으로서 초임 임기가 만료되는 김행장을 한 달전쯤 만났을 때 그는 CEO의 중요한 책무중 하나가 후계자 선정이며 경마방식과 릴레이방식 두 가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말을 매우 조심스레 내비쳤다. 언젠가 은행장을 그만두면 월급쟁이 노릇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정치권력도, 금융당국도, 사정기관도 그리고 금융권도 김정태 행장을 이제 그만 흔들자. 그는 일할 때와 떠날 때를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