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은행장과 환자 사이에서

[현장클릭]은행장과 환자 사이에서

강기택 기자
2003.06.12 12:34

[현장클릭]은행장과 환자 사이에서

지난 10일 밤 기자는 후배 은행팀 기자, 사진기자와 함께 모 대학병원 특실로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을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환자인 김행장의 회복과 안정을 감안해 인터뷰를 자제해오다가 이날 다른 신문 가판에 김행장의 병상 인터뷰 기사가 나와 버려 그냥 넘어갈 수가없게 된 거죠.

 

병원에 도착해 보니 김행장의 병실 문은 굳게 잠궈져 있었습니다. 몇번이고 문을 두드렸지만 병실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병원을 옮겼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간호사는 오후 4시께 퇴원을 했다고 연막을 치더군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왕 왔으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병실에 환자가 있다면 의사든 간호사든 자정전까지 한번쯤은 드나들 거라는 판단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병원 경비원이 병실 앞을 지켜서더군요. 환자의 요청으로 출입을 통제한다고 말하면서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꾸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설 대로 서 있던 김행장과 가족들이 경비원을 불렀더군요.

 

경비원 덕택에 김행장이 병실 안에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는데 문제는 김행장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병실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데스크는 지면을 비워 놓았다며 기사와 사진을 빨리 보내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그 사이 기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국민은행 비서팀과 홍보팀 관계자들도 달려왔습니다. 기자들은 공동 인터뷰를 요구했고, 다음주 퇴원할 만큼 차도를 보이고 있다는 김행장의 근황 사진을 찍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김행장과 가족들은 이같은 요구를 모두 거부하고 단 한명의 기자와 전화통화로 근황을 전하는 정도에서 응하겠다고 하더군요.

리딩뱅크인 국민은행의 ‘은행장 김정태’와 급성폐렴을 앓고 난 ‘환자 김정태’ 사이에서 기자들은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건강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자들은 직업논리에 충실하기 보다 환자보호라는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2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국민은행장 김정태'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사진도 찍지 못한 아쉬움은 계속 남더군요. 기자 근성 탓이겠지요.

 

그렇지만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자는 마음속으로 나마 김행장의 쾌유를 거듭 빌었습니다. 밤늦도록 환자와 가족들을 괴롭힌 것을 사죄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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