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개방 발목잡기

[광화문] 개방 발목잡기

김영권 경제부장
2003.08.11 12:58

[광화문] 개방 발목잡기

 우리나라는 국회에서 쌀값을 정한다. 당연히 정치논리가 시장논리 위에 있다. 국회의원들은 매년 쌀값을 올려 표를 산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우리 말고 없다.

 지난 2000년 가을 농림장관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는 사상 처음으로 추곡수매가 동결을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3% 인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여기에 1%포인트를 더 얹어서 쌀값을 정했다.

다음해인 2001년. 양곡유통위는 수매가 4~5% 인하안을 제시했다. 인하 건의는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동결안으로 바꿔치기 했고,국회는 이를 수용했다. 그해 정영일 양곡유통위원장은 사표를 냈다. 쌀값을 올리는데 `들러리'를 서지 않으면 아예 `왕따'를 시키는 데 화가 났을 것이다.

 지난해는 어땠을까. 양곡유통위는 쌀값을 2% 내리든지,3% 올리라는 `이상한' 건의안을 냈다. 한마디로 맘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부가 인하 쪽을 선택했다. 국회는 이 정부안을 놓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결국 동결로 결론냈다.

최근 3년간 양곡유통위와 정부, 국회는 쌀값을 놓고 이렇게 `쇼'를 했다.

 올해는 어떤가. 천신만고 끝에 칠레와 맺은 FTA(자유무역협정)의 비준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동의안 처리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 유일의 `FTA 고아'다.

FTA 이행특별법은 법안을 발의할 사람이 없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더니 발의 후에는 다시 동면 상태다. 개혁당 유시민 의원과 민주당 의원 22명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의 서명자엔 농림해양수산위 의원은 물론 농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 한명도 없다. 법안은 특별기금을 만들어 농가에 7000억원을 지원해 주는 내용인데 농촌 출신 의원들은 모두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투자협정은 `스크린쿼터'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다.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한국영화 시장을 기필코 사수하겠다며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가 일본 중국 싱가포르 멕시코 등과 FTA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해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중인 FTA 협상은 250건에 이른다. 내년에는 300건을 넘을 것이라고 WTO는 보고 있다. 그야말로 `FTA 붐'이다. 이런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쌀 시장도 당장 내년에는 빗장을 더 확실하게 풀어야 한다. 95년 우루과이라운드때 제네바 협상장 앞에서 혈서를 쓰고 할복자해를 해도 막지 못한 게 쌀시장이다.

그때 얼마나 혼이 났는지 정부는 농촌에 64조원이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농업에 경쟁력을 불어넣고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며 담배 영화관람 주식투자 등 이곳저곳에 세금을 매겨 걷어갔는데 그 돈으로 도대체 무얼했는지 모를 일이다.

개방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쇄국으로 번영한 나라는 없다. 정치논리에 연연해 개방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들은 그것이 어떤 화를 부를지,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자세가 돼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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