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모스크바에서

[광화문]모스크바에서

박형기 국제부장
2003.08.14 12:24

[광화문]모스크바에서

기자가 정말 좋은 것이 딱 하나 있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배설'할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기자는 지금 모스크바 붉은 광장이 보이는 한 아파트에 있다. 출장은 아니고, 휴가다. 동생이 모스크바에서 살기에 모스크바 구경 좀 하게 됐다.

'개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는 시쳇말처럼 휴가중임에도 기자의 눈에는 역시 기사밖에 안 보인다. 요즘 러시아는 검찰의 석유업체 유코스에 대한 수사로 떠들썩하다. 1990년대 국유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성장한 러시아 재벌은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현재 수사의 과녁은 미하일 호도로프스키 유코스 회장에게 맞춰져 있다.

푸틴은 지난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재벌과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는 러시아 자본가들이 민영화 과정에서 불법축재한 자금을 눈감아주는 대신 재벌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호도로프스키 유코스 회장이 최근 오는 12월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재벌의 힘이 정치권에 정면으로 맞설 정도로 커진 것이다.

최근 중국정부도 부정축재 혐의로 상하이의 부동산재벌인 저우정이를 수사하는 등 개혁개방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재벌들을 손보고 있다. 러시아는 재계와 정계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데 비해 중국은 정치권의 일방적인 재벌 길들이기 양상이다. 러시아가 다당제인데 비해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도 더 성장하면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올라가고,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도 언젠가는 붕괴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소련이 해체됐던 것처럼 중국도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철저하게 언론을 장악, 티벳 신쟝 등 자치구의 분리독립운동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매년 수백 건의 총기사고가 날 정도로 독립운동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에 정치동란이 발생할 경우, 경제발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중국이 견실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비민주적이지만 정치체제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동란은 구소련과 비교가 안될,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미국이 중국의 인권을 문제삼을 때, 중국인구의 1%만 난민으로 풀어도 세계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처럼 중국의 정치적 혼란은 세계의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럴 염려가 없다. 선 정치개혁 후 경제개발의 수순을 밟았기에 정치적 불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고목에 꽃이 피듯 경제도 소생하고 있다. 러시아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매년 5%대의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속도라면 중국이 장기간 정치적 혼돈에 휩싸일 경우, 중국을 제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중국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배낭여행객의 필독서인 '세계를 간다' 시리즈에 러시아편이 없는 것만 보아도 한국의 대러시아 정보가 얼마나 빈약한 지 짐작할 수 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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