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4형제 실업자 가족
고향길을 찾아 나설때만 해도 이번 추석은 어느 때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무려 5일간의 연휴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뤘던 일들을 하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조상 묘를 찾는 일이나 오랜만의 가족모임과 이웃들을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태풍 ‘매미’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서가 아니다. 앞집 분위기가 썰렁했고 명절때면 항상 객지에서 온 자녀들로 붐볐던 김씨 집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4형제중 고향집을 찾은 것은 막내 뿐이었다. 그 사연은 너무 뜻밖의 일이었다.
김씨 집 형제들은 고향마을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50대 중반의 큰 형님은 대기업 임원이었고 둘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제법 돈을 모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40대 후반의 셋째는 5년전 10여년 동안의 교사생활을 접고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한때는 주가가 액면가의 10배 이상으로 평가되는등 성공적 변신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다. 어릴 적부터 유난힌 똘똘했던 막내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역시 벤처사업가 이었다. 누가 봐도 잘 나가는 형제들이다.
이렇게 잘 나가던 형제들이 최근 몇 년사이 모두가 실직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동네에 퍼져 있었다. 큰 형님은 5년전 명예퇴직후 하청업체를 경영하며 전관예우를 받았지만 지난해 부도로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둘째는 임금상승 인력부족에 노사분규까지 겹치면서 3년전 사업을 정리했다. 지분등 회사 재산을 모두 종업원에 주고 빈 손으로 나온 이후 아직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백수’다. 셋째 또한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이제는 빈털터리가 됐다. 막내의 벤처기업은 형들이 펀드를 구성, 사업자금을 대주면서 ‘대박’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앞가림 하기조차 벅찬 실정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쯤되자 50대의 첫째와 둘째는 마땅한 소득원이 없어 서울의 집을 팔고 서울근교로 이사하기로 작정했다. 집 값 차액을 모아 돈벌이에 출자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셋째는 학원강사로 나섰고 막내인 넷째는 이민을 가기 위해 사업을 정리중에 있다.
.“그래도 아들들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해 봤으니 괜찮아.하지만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큰 손자는 아직도 놀고 있구 줄지어 졸업하는 손주들 장래를 생각하면 정말 막막해.” 수심 가득한 얼굴로 하소연하는 김씨는 그렇게도 기세등등했던 옛 모습을 잃은채 자식과 손주들의 일자리 걱정에 한 숨만 지었다.
정부 공식통계상 우리나라 실업률은 3%대다. 그러나 체감실업은 빙점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가정주부가 은행강도를 저지르고 카드빚과 생활고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실업과 무관치 않다. 실업문제는 지금 심각한 사회문제의 복병으로 잠복해 있다. 고향마을 김씨집에 다시 웃음꽃이 필 수 있도록 특단의 실업대책은 빠를수록 좋다. 실업해소 없는 경기회복이나 성장잠재력 확충은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