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투자펀드냐 재벌이냐

[광화문]투자펀드냐 재벌이냐

박종면 부국장
2003.09.25 07:40

[광화문]투자펀드냐 재벌이냐

미국의 유력 투자펀드인 리플우드가 대주주인 일본의 신세이은행과 15%지분 매각을 협상중인 하나은행은 지난해 초 전경련이나 상의 등을 통해 국내 기업들을 대주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의사를 타진을 했었다. 김승유 행장이 직접 나서 전경련과 상의 주요 회원사들에게 지분참여를 물었고 몇몇 재벌기업 오너들로부터는 긍정적 답변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로부터의 자본유치는 성사되지 못했다. 은행법상의 지분 제한도 문제였지만 기업들의 출자한도가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하나은행은 지분을 4~5%씩 갖는 기업을 3~4개만 유치하면 경영권 위협을 걱정할 것도 없고, 자본확충도 가능해 큰 기대를 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국내 기업들의 출자가 꽁꽁 묶여있는 사이 은행산업은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미국계 투자펀드들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뉴브리지가 제일은행 지분 51%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 36.6%를 사들였고 드디어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해 금감위 승인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개정돼 시행중인 현행 은행법은 금융업을 주력으로 하지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물론 외국의 투자펀드도 시중은행 의결권 주식에 대해서는 10%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 대로라면 론스타는 물론 뉴브리지나 칼라일도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 이들은 금융업을 주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이 된다면 은행업이든 부동산 투자든 닥치는 대로 하는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금융당국은 지난 90년대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파산한 베를린 주립은행을 론스타가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정통 금융업자가 아닌 투기자본에 은행업을 맡길 수는 없다며 거절하기도 있다.

 

재경부나 금감위가 이들 미국계 투기펀드들을 금융 주력자로 유권해석을 내리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이같은 편법은 외환위기 직후 부실금융기관이었던 당시의 제일은행을 정리하면서 생겨났는데 지금까지도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그것이 투기자본이든 투자자본이든, 장기투자든 단기투자든, 자본의 충실도를 가져오고 금융 서비스를 개선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가릴 게 없다는 주장도 말은 된다.

 

그러나 이들 투자펀드의 진출로 국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고, 거래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그대로 해외로 유출되고, 멀쩡한 기업들에까지 여신지원이 중단한다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리플우드의 경우 신세이은행을 인수한 후 수백개의 일본 기업들에 대해 여신을 중단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뉴브리지 캐피탈도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 기업여신을 대폭 줄였다. 골드만 삭스는 경영자문을 맡아 얻은 경영정보를 활용해 교보생명을 인수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이들에 비하면 국내 재벌기업들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여론도 살피고 정부당국의 눈치도 본다. 염치라고는 없는 해외 투자펀드에 편법으로 계속 은행업을 개방하겠다면 국내 재벌기업에도 문을 열어 줘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재경부나 금감위는 은행업에 진출하겠다는 해외 투자펀드들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