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 뜻이 너무 높습니다"

[광화문]"그 뜻이 너무 높습니다"

김재승 온라인총괄부장
2003.10.08 17:51

[광화문]"그 뜻이 너무 높습니다"

출근길 전철 안. 옆자리의 나이 지긋해 보이는 두 장년의 아저씨. 거침없는 대화에 귀가 쏠린다.

"이봐, 자네라면 보험금을 한곳에만 넣겠나", "아니,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한곳에만 넣는 바보가 어디있어" (뭔 얘기지, 보험금을 한곳에만 넣지 않는다?) "그렇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렇게 떠드는 자들이야 당사자들 뿐일텐데", "진짜 지긋지긋해.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될런지. 누구는 받고 누구는 안받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런 뒷돈 없으면 기업 못하고 정치 못하는 이놈의 현실이 서글픈 것 아닌가". (아, 이제 알겠다. SK그룹이 대선 뒷돈을 여야 모두에 줬다고 해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구나.) "그래. 제발 이제 좀 정경유착 어쩌구 떠드는 소리 안듣고 살았으면 좋겠구만". (아, 이런 분들이 기업하고 정치를 하면 좋으련만.)

대검의 SK그룹에 대한 비자금 수사가 여야의 불법 대선자금 규명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나라안이 온통 떠들썩하다. 그걸 보면서 느끼는 일반국민들의 느낌은 어떨까. 전철안에서 만난 두 아저씨의 그것과 별반 다를게 없지 않을까. 누구는 받았고 누구는 받지 않았고 그게 뭐 대순가. 수십년 한국 현대사를 유린해온 그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억원대 비자금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하고 5억달러의 대북 불법송금을 한 것으로 드러난 현대그룹 사건은 또 다른 근자의 일일뿐. 좀 더 기억을 뒤로 해보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정경유착의 뿌리 깊은 고리를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어디 정경유착 뿐이던가. 탈세에다 분식회계, 주가조작, 편법증여 및 상속 등등. 그러고 보면 우리 기업들은 정권에 약점 잡힐 일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경유착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인가.

며칠전 늦은 밤, 열심히 TV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프로그램. 비록 빈 손으로 떠났지만 후대에 값진 유산을 남긴 진정한 부자, 뭐 그런 테마였던 것 같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 대형 기업비리가 터질 때마다 역설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언제 들어봐도 새삼스럽다.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 실시와 전문경영인제 도입. 세무사찰을 받은 뒤에 오히려 국세청으로부터 `모범납세사업체`라는 현판을 받을 정도의 투명한 기업경영. 어디 그뿐인가. 기업경영을 정치권으로부터 철저히 독립시키려고 한 평생의 변함없는 노력들, 참 대단한 분인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이 상공장관으로 입각하기를 요청했을때 "내가 상공인인데 상공장관을 맡으면 정경분리의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했다지 않은가. 그런 그이기에 수백억원의 재산마저 모두 사회에 나눠 주고 혈육에게는 정신적 유산만을 전해줄 수 있었을터.

10월9일. 둘째녀석 귀빠진 날. 고민하지 말고 서점을 찾자. 유박사 일대기나 골라야 겠다. 얼마나 이해를 하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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