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실수할 시간도 없었던 은행장'
지난 일요일(2일) 오후 5시쯤 퇴진설이 돌고 있던 이강원외환은행장과 우여곡절끝에 통화가 됐습니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핸드폰 번호가 아니라 몇몇 임원들만이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눌렀던 거지요.
당사자에게 진퇴여부를 직접 묻는 게 결례임을 무릅쓰고 질문을 던졌을 때 기자는 평소의 어법과 다른 뉘앙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일 오전(이사회 예정일인 3일 오전 10시)까지는 (물러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한마디였습니다.
이 말은 곧 "이사회 후에는 사실이다"라는 것으로 해석됐고 그의 굳은 목소리에서 더욱 '퇴진이 확실하구나'라는 감을 잡았습니다. 물론 이행장은 더 이상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사회가 열리던 날 임원들에 사의를 밝힌 이행장은 노조의 농성으로 이사회가 지연되는 동안 내내 행장실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비서실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도시락을 주문했지만 이마저 거른 채 론스타와 노조간의 협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거지요.
하이닉스 처리와 외자유치를 위해 주말도 없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했고, 이제 두가지 난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능력을 펼쳐 보이려던 순간 느닷없이 물러나야 하는 안타까움을 그는 온종일 행장실에서 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론스타가 코메르츠은행 출신 독일인 부행장들에 대해 코메르츠 본사에 해임을 요구, 물러나게 한 정황에 비춰 이강원 행장이 자진 사퇴하도록 한 것은 그나마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예우를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경우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을테니까요.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사표가 수리된 뒤 이행장은 몇몇 임원들과 새벽까지 폭탄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이임사에서 표현했듯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고뇌에 찬 결단'의 배경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은 채 마냥 이별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기자가 4일 오후 고별 인터뷰에서 역대 외환은행장들이 계속 중도 퇴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자 "GE의 잭웰치 회장이 40대의 제프리이멜트를 후계자로 선정한 것은 충분히 미스테이크(실수)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유로 그의 속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강원 행장이 외환은행에선 실수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지만 멀지않아 그런 기회가 오겠지요. 그가 은행을 떠나는 게 능력이 모자라서도, 경영실적이 나빠서도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