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상장·등록 기업의 '함정'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쌔스(SAS)는 1976년에 설립돼 통계처리용 소프트웨어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12억달러(1조4천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는 이 회사는 세계 각국에 지사만 200여개에 달하고 고객사도 금융 통신 제조 교육기관 등 4만여개에 이르는 세계 5위의 소프트웨어 업체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굿나잇 박사가 최근 방한해 연구개발(R&D) 센터를 국내에 세우는 방안을 얘기했다.
특이한 것은 굿나잇 회장은 이 회사를 뉴욕 증시나 나스닥에 상장시키지 않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굿나잇 회장은 이에 대해 "기업의 매출과 수익은 매년 기업의 전략과 시장상황에 따라 늘 목표치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상장하고 나면 주주들이 해마다 매출과 수익성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경영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그의 이같은 경영철학에도 불구하고 쌔스는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에 매년 오른다.
본사가 위치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쌔스 왕국'이 건설돼 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사원들은 거의 직장을 옮기지 않는다. 또 회사 부지 안에 수영장 체육관 헬스시설은 물론이고 유아원 초-중등학교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 다른 곳으로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사립대학을 만들었으며 차세대 학교모델인 `쌔스 인스쿨'을 설립하기도 했다.
IPO에 따른 투자관리에 골머리 썩히지 않고 그 돈으로 직원 복지에 더 투자한다는 경영철학이 엿보인다.
초창기인 70년대만 해도 통계 패키지 정도의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이지만 이제는 기업과 금융기관, 공공기관들이 경영에 활용하는 필수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 90%가 쌔스 제품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이 회사의 경쟁력을 알만하다.
기업이 상장-등록(기업공개)하면 투명성을 분명히 하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최우선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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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같은 기업운영의 최우선 덕목인 투명성과 주주중시 경영원칙이 기업의 비전-전략과 충돌하는 경우이다.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기업은 장기전략과 비전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운영되는 기업은 궁극적으로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올초 우리 통신업체들이 차세대 통신서비스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한다고 했다가 이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의 부정적인 견해가 잇따르자 투자목표를 대폭 하향조정했다.
그러는 사이 최근 미국 유럽 등에서 개최된 각종 정보통신 전시회에서 유럽 일본 통신업체들의 차세대 통신서비스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까지 이른 사실이 드러났다.
단기 수익과 매출에 치중하다가 결국 차세대 성장동력에서 앞서갈 기회를 놓치고 만 꼴이 됐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쌔스가 IPO를 거부하는 경우인 것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