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래도 복받은 CEO 황영기

[광화문]그래도 복받은 CEO 황영기

박종면 부국장겸 금융부장
2004.04.08 12:33

[광화문]그래도 복받은 CEO 황영기

스스로 1년정도 한시적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은행장과 지주사 회장을 겸직한 경우는 우리금융의 황영기 회장이 처음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노회하고 파워풀한 경영자로 알려진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조차 은행장을 겸직하진 못했다.

우리금융 회장 재임기간 3년을 `행복한 외출'이라고 했던 양식있고 멋을 아는 CEO 윤병철 전 회장은 안타깝게도 3년내내 자회사 은행장과 긴장관계에 있어야 했다. 윤 전 회장이 하나은행 CEO시절에 비해 눈에 띌만한 경영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여기에도 원인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은행장에 대한 실질적 인사권을 신한지주처럼 회장이 갖는 게 아니고 정부가 갖는다면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는 게 갈등을 없애는 길이다. 우리금융이 완전 민영화돼 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황회장은 1년이 아니라 임기내내 은행장을 겸하는 게 좋다. 노조가, 언론이 뭐라 하든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다면 은행장을 겸직함으로써 확고한 리더십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이다.

황영기 회장은 취임후 자회사인 광주 경남은행장 인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방은행장 인사, 하물며 우리은행 집행임원 인사조차 소신껏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틈만 보이면 청탁이 밀려 들고 CEO의 인사권에 도전하는 게 정부가 대주주인 금융기관들의 현주소다.

외환위기의 와중에 무명 증권사 사장에서 대형 시중은행장에 발탁되고 은행 CEO 선임 역사상 가장 경쟁이 치열했다는 이른바 `남북전쟁'을 거쳐 통합 국민은행장에 선임됐던 김정태 국민은행장에 비하면 이번 우리금융 회장 인사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15명의 후보가 6명으로 압축되고 다시 3명이 막판 경쟁을 했지만 처음부터 황영기 회장이 단연 돋보였다.

김정태 행장은 6여년간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은행권에 `장사꾼 문화'를 도입한 공이 크다. 또 LG카드 사태에서처럼 그것이 은행의 이해와 상충될 때는 정부당국과도 맞서는 승부사 기질도 보여줬다. 시장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승부사 기질이라면 황영기 회장도 누구 못지 않은 것 같다. "CEO는 검투사와 같다. 지면 죽기 때문에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할 것이다" 그의 `검투사론'은 시장참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김정태 행장은 은행산업에 대한 많은 기여에도 불구, 본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스톡옵션 과 최근의 성과급 문제로 흠집이 났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10월말 임기가 끝나는 김행장이 지난해 적자를 내고도 재임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보이고 있다.

 

국내 은행 CEO들의 급여나 스톡옵션은 외국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껌값'이지만 돈에 관한 한 철저하게 이중적인 게 우리사회다. 또 경영성과에 관계없이 연임에 인색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점을 황영기 회장은 늘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참여연대는 끈질긴 사람들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가 해명까지 했지만 들은 척도 안했다. 심지어 은행장 취임식날 5∼6년 전의 일을 갖고 배임협의로 고발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그렇지만 황회장 입장에서 보면 나쁜 일만은 아니다.

참여연대가 주장하듯 삼성출신의 황영기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이나 우리은행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삼성을 편법 지원할 가능성은 1%도 안된다. 우선 삼성 계열사 중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는 데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은행들이 찾아 가서 돈좀 써 달라고 부탁하는 형편이다.

삼성차 부채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은행이 주채권은행이라 해서 특혜를 줄 여지는 없다. 삼성차 부채 문제가 특정은행이 결정하고 추진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황회장 입장에서는 실제로 은행경영을 하면서 삼성에 특혜를 주거나 편법 지원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참여연대는 기회만 있으면 황회장을 공격하고 긴장케 만들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황회장은 재임기간중 삼성계열사에 대한 특혜지원은 커녕 거액의 스톡옵션을 챙기거나 성과급을 받는 것조차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덕분에 황회장은 수도승처럼 스스로에 엄격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가 성공할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어쩌면 황회장은 그가 퇴임하는 날 참여연대에 감사장을 줘야 할 지도 모르겠다.

취임한 지 보름도 안돼 우리카드 직원 2명이 400억원을 횡령해 선물 옵션투자로 날려 버린 사건은 황회장에겐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만지는 금융기관, 특히 흡수합병으로 자신들의 장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류의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금융은 계약직을 포함하면 전체 직원수가 2만명을 넘는 거대 조직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취임초기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게 차라리 다행이다. 황회장이 아무리 좋은 경영성과를 올려도 사고 한번만 터지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또 거액의 횡령사고가 터져도 황영기 회장은 그래서 복받은 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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