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李의 전쟁'
개혁성향의 학자가 관료사회에 들어가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DJ 정부때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태동씨와 금감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윤원배씨가 그랬다.
산업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 금융연구원을 거쳐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해 3월 관료사회에 발을 내디딘 개혁파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후배 학자들을 위해서도 더 이상 학자출신 관료가 실패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곤했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취임과 함께 금감위에 개혁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부위원장은 1년 가까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평소의 지론인 산업과 금융자본의 분리나 재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주장하기 보다 조직내 융화나 조화에 더 신경썼다.
마치 `왕따'가 된 것처럼 지시를 해도 말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인내했다. 그래서 이질적 관료사회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다느니, 현실 적응력이 뛰어나느니 하는 말도 들었다.
개혁파 이 부위원장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것은 취임 1년이 되면서부터. 지난 3월초 그는 1년여의 침묵을 깨고 `거사'를 단행했다.이 부위원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몇몇 기자들을 불러 폭탄성 발언을 했다. "삼성생명이 계약자 몫으로 배정해야 할 투자유가증권 평가익 2조원을 주주몫으로 배정하고 있다,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금감위가 발칵 뒤집혔다.
그의 이같은 행동을 놓고 돌출발언이니 해프닝이니 하는 해석이 나왔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늘 불안하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렇지만 그의 발언은 돌출도, 해프닝도 아닌 계산된 것이었다. 이런 식이 아니고 금감위의 기존 채널을 통해서는 생보사 회계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폭탄발언 후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때 자리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지원사격으로 위기를 넘겼다. 더욱이 그는 당초 의도한 대로 생보사 회계문제 공론화라는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금감위로서도 생보 회계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게 됐다. 이 문제를 다룰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지고 공청회가 열렸다.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승리는 그의 입지를 넓혀줬다. 그는 행운아였다. 더욱이 총선이후 금감위 내부에서도 생보회계 문제를 대하는 태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생보 회계를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일찍이 누구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했다.
이에 고무돼서 였을까. 5월초 이동걸 부위원장은 서울대에서 열린 금융연구회에 참석해 그동안 참와왔던 자신의 개혁철학을 쏟아냈다. "국민소득 1만달러 함정을 벗어나려면 재벌의 등에 엎혀 성장하는 전략으로는 안된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리와 반칙을 정당화하고 있다. 생보사 투자유가증권 회계는 계약자 권리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배분을 공정하게 하는것이 생보사의 재무안정성을 해친다면 그런 회사는 정리돼야 한다."기존의 관료라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말들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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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금감위 통과가 예상됐던 생보사 회계처리 개선안은 다시 논의가 연기됐다.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만나 `상생'과 투자확대를 결의한 마당에 이를 강행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보수와의 전쟁', `삼성과의 전쟁'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결과를 속단하기엔 이르다. 그가 지나친 날카로움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할 지, 아니면 성공한 학자출신의 개혁파 관료로 기록될 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