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혁신주도경제 vs 혁신기피경제
참여정부가 `혁신주도형 경제', `정부 혁신'의 기치를 내거는 것을 보면서 정부 중앙부처 한 사무관의 푸념이 생각난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한창 꿈에 부풀어 있던 그는 감사원 감사를 받은 뒤 "이래서야 누가 혁신할 생각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제 딴엔 예산을 아껴보겠다고 정부 발주사업에서 사업자를 바꿨다가 몇달간의 감사에 혼쭐이 났던 모양이다. 감사원은 그의 `의도'보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자를 바꾼 그의 `행동'만을 추궁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공직사회의 불문율을 체득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술 혁신을 이룬 기업들이 공공사업에 진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사무관과 다른 부처에 근무하는 과장급 공무원도 "감사원이 달라지면 공직사회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감사원이 억울해 하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이 공직사회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그만큼 커졌고 공직사회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출발선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이후 우리 경제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자리잡은 경제 양극화도 혁신을 잠재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잭 웰치는 그의 자서전에서 "(큰 자본과 우수한 인력을 가진) 대기업은 작은 기업이 할 수 없는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누구도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술회했다.
자본과 인력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돼 가고 있는 우리 경제가 `혁신기피형 경제'로 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다. IMF사태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늘어나는데도 설비 투자가 급격히 줄어든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기업들은 최근 벌어들인 돈을 자사주 소각으로 태우고 있다. 잭 웰치는 자서전에서 줄곧 GE안에 꽈리를 튼 관료주의와 싸워왔음을 역설한다. 5000만달러 짜리 대형 프로젝트를 실패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승진시킨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IT.벤처정책하면 `열병`과 `거품'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무늬만 벤처인 기업에 자금이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가총액 1조7000억원, 1조5000억원인 엔씨소프트, NHN 탄생은 우연이 아니다. 빌 게이츠를 부러워하던 한국 청년 가운데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같이 30대에 6000억원대 재산을 가진 청년갑부가 등장했다.
벤처열풍은 벤처기업에 자본의 물줄기를 대주었지만 무엇보다 대기업에 쏠려 있던 인적자원이 실패를 무릅쓰고 벤처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게 했다. 그러나 잔치가 끝난 뒤 인력 순환은 멈췄다. 참여정부가 집권 1년여만에 아젠더로 내놓은 `혁신주도형 경제'가 단지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