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고지식한 공정위

[광화문] 고지식한 공정위

김영권 정보통신부장 겸 특집기획부장
2004.10.07 10:07

[광화문] 고지식한 공정위

참여정부 들어 검찰이 정말 무서워졌다. 이젠 확실히 국정원이나 보안사보다 검찰이 더 무섭다. 정치권의 실세는 물론 재벌총수, 대기업 CEO, 지방자치단체장 등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검찰에 빌미를 잡힐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다. 검찰 불려다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도 몇번 있었다. 성역의 베일을 걷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그것은 돈없고 백없는 서민들에게 일종의 보상심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참여정부 들어 더욱 막강해졌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성품과 능력을 추켜세우는 인물중 한사람이다. 덕분에 출자총액제한제,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계좌추적권 연장 등 굵직한 정책들도 뚝심있게 밀어부치며 성가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검찰과 달리 인기는 땅에 떨어져 있다. 홀로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다. `공정위, 미워요!', 아니면 `공정위, 나빠요!'란 원성이 곳곳에서 들린다.

재계에 비친 공정위의 모습은 `규제의 화신'이다. `경쟁촉진'을 위해 존재하는 공정위가 `경쟁제한'을 본업으로 삼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죽하면 재정경제부조차 공정위의 `고지식함'을 성토하고 나설까 싶다. 공정위가 자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재경부와 불협화음을 낸 것은 지난 2001년 진념 경제부총리 때부터다. 그때 재경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강하게 고수하려는 공정위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정위가 든든한 후견인인 재경부로부터도 `말이 안통한다'는 핀잔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공정위는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공정위는 재벌들이 변하지 않는 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IMF 사태를 거치면서 재벌들은 많이 변했다. 외환위기 이후 5대 재벌 가운데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은 삼성 뿐이다. 현대는 여러 개로 쪼개졌고, LG는 구씨와 허씨가 나눠 가지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선했다. 대우는 망했고, SK는 분식회계 파문과 적대적 M&A 공세에 시달리면서 총수가 그룹을 좌지우지할 힘을 잃어버렸다. 삼성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너무 잘나가고 있으니 뭐라 꼬투리를 잡기도 난처한 상황이다. 가장 재벌다운 곳이 가장 잘 하고 있으니 할말이 없게 된 셈이다.

이같은 변화에서 공정위가 읽어야 할 핵심 코드는 `개방'이다. 재벌 폐해가 심하고 경제가 닫혀 있던 시절에는 공정위의 규제가 불가피했다. 규제 효과 또한 잘 먹혀들었고, 여론의 지지도 높았다. 그것은 검찰이 베일에 쌓인 특권층의 비리를 들춰내는 것과 같은 효과다. 그러나 재벌이 변하고 경제가 개방된 상태에서는 공정위도 변해야 한다. 규제의 양은 물론 질과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 최근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를 불허한 것도 공정위가 좁은 국내 시장만 놓고 독과점 폐해를 고지식하게 따진 결과다.

공정위의 초기 멤버들은 골수 재벌들의 전방위 공세와 로비를 물리치면서 법과 제도의 틀을 만들어낸 투사형 인물들이었다. 이런 전통과 문화 때문일까. 공정위는 왕따를 당하면 당할수록 전의를 다지는 386식 조직이다. 하지만 이런 옹고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과거사의 망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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