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 출장을 다녀와서
지난 주 일본의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을 방문하여 일본경제의 기조적인 변화 여부와 향후 전망에 대한 견해를 듣고 왔다. 모든 이코노미스트들의 현실 진단과 향후 전망이 동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90년대 전반에 걸쳐 기업측면에서 의미 있는 구조조정이 진행된 결과 현재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에서 탈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일본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들은 기업행동의 변화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80년대 말까지 20~30년간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일본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진입함으로써 기존 성장전략의 한계를 깨닫게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80년대 후반의 버블팽창으로 전략수정이나 행동변화의 기회를 상실했다. 버블붕괴는 기업으로 하여금 수익성 개선과 부채축소에 주력하도록 강요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변화가 10년 정도 지속된 토대 위에서 99~2000년부터는 기업들이 핵심(core)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적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99~2000년을 경계로 비교우위가 큰 고가품(High-end) 산업에 집중했다.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품질 리스크가 큰 해외보다 국내로 생산기지를 환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2002년 초부터 국내 설비투자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기술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숙련도가 높은 40대의 고용과 보상이 증가하게 됐다.
설비투자 증가와 더불어 임금소득이 증가한 40대가 소비를 주도하면서 장기간의 내수침체가 반전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고성장이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맹목적으로 중국진출에 열을 올리는 한국기업으로서는 배울 점이 많은 대목이다. 한국이나 일본 경제 모두 중국의 고성장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처럼 'made in Japan'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산업의 비교우위를 지키는 동시에 국내경제의 성장력을 보존하는 길이 될 수 있다.
향후 1년간 일본 경기는 순환상의 후퇴국면이 예상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정보기술(IT)경기의 둔화와 고유가다. 그 밖에도 미국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중국경제의 성장기여도 둔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02년 1월부터 시작된 이번 경기회복은 이제 다양한 경제지표가 정점을 예고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장기적인 성장론자도 2005년 초부터는 경제성장률의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신중론자들은 일본경제에 제법 개선된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인정하지만 경기회복이 제조업이나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요약하자면 일본경제의 잠재성장력은 과거 10여년에 비해서는 개선된 상태라는 결론이다. 앞으로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과 부실채권 그리고 장기침체로 대변되는 "일본병(病)"이 아니라 세계경제와 연동된 경기순환의 궤적을 시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신중론자의 견해에 동의하더라도 일본경제는 1~2번의 단기적인 경기순환이 진행된 이후 90년대의 장기침체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