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근칼럼] 1등이 1297명인 제도

[홍선근칼럼] 1등이 1297명인 제도

홍선근 편집국장
2004.10.20 11:39

[홍선근칼럼] 1등이 1297명인 제도

나라 안에 인문계만 따져서 고등학교가 1297개 있다. 대학은 신입생을 뽑을 때 이들 고등학교를 똑같이 봐야 한다. 학생수가 같을 경우 이 학교의 50등과 저 학교의 50등은 실력이 같다. 행여나 조금이라도 다르게 취급하면 큰코 다친다.

신성불가침의 금과옥조를 침해한 죄로, `자격은 의심되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힘을 거머쥐고 있는 교육권력'으로부터 무서운 불이익과 수모를 겪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든 학교든 똑같이 취급받아야 한다는 신조를 굳게 믿는 사회풍토로부터도 몰매를 맞는다. 서양의 중세로 치면 종교상의 이단이요, 파문이다.

고교등급제를 부인하는 신성한 논리를 약간만 분석해 보자. 1297개 학교를 동일하게 취급하라는 주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도시와 농촌, 강의 남쪽과 북쪽, 산의 동쪽과 서쪽의 어디에 있든 학교는 차별받으면 안된다. 이는 지난 30년간 이 땅을 지배한 성스러운 교육평준화의 다른 말이다. 다르게 보는 것은 죄악이고 같게 보는 것은 선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믿음과 도그마를 우리는 획일주의라고 부른다. 세상은 다른 것들로 꽉 차 있다. 사람이든 학교든 같을 수가 없다. 1297개 학교는 다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마땅히 달라야 한다. 이를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얼마전에도 지적했듯 침대에 맞춰 키가 큰 사람은 잘라 죽이고 키가 작은 사람은 늘려 죽인 그리스신화의 괴물 프로크루테스의 살인행위와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획일주의는 참을 수 없는 병폐라고 여기면서도 교육평준화를 잘 참아내고 있다. 다르게 커야 할 학생들, 그들로 이뤄진 학교를 천편일률로 똑같이 평가하라는 요구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교 간엔 등급을 불허하면서 학생 간엔 버젓이 등급을 매기는 근거는 또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각각 다른 영역의 문제일 수가 있다는 식으로 관대하게 수용한다.

일부 대학이 이런 도그마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등학교별로 다르게 평가한 것으로 교육부의 지적을 받았다. 이를 놓고도 대학들의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대학들이 일부러 부유계층의 자녀들을 많이 뽑기 위한 목적에서 등급제를 시행한 것으로 해석한다. 부유한 대학이 부유한 학생들을 선별했다는 의혹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제는 고등학교들을 다르게 보는 것 자체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다르게 보고자 할 때 드러나는 결과가 너무나 심각한 게 문제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모습. 가령 농촌보다는 도시의 학교, 지방보다는 서울, 서울에서도 강북보다는 강남의 학교에 더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아무리 평준화니, 등급제 불허니 외쳐도 그것은 교육부가 왜곡된 현실을 덮기 위해 맹목적 교리를 강요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이미 등급이 매겨져 있다.

따라서 대학을 박해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30년간 `평준화로의 길'을 달려온 지금 우리가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살펴야할 상황이다. 유신체제가 만들어낸 평준화 신화에 참여정부의 교육부는 물론이고 전교조마저 왜 그토록 집착하는지 수긍하기가 어렵다.

교육평준화는 살인괴물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다. 저 괴물의 침대를 이제는 부셔야할 때가 됐다. 교육현실의 엉망 정도가 워낙 심해서 이 현실을 바로잡는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기 힘들다. 그러나 교육부는 우선 평준화와 등급제 불허의 밑바닥에 놓인 획일주의가 잘못됐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은 고수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획일화를 포기하고 건전한 차별화를 인정하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대안을 찾을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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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근 이사

안녕하세요. 편집국 홍선근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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