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근칼럼] '1000호 신문' 희망의 전달자
언론인의 동업의식이 사라졌습니다. 20년 전만해도 기자들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언론사가 달라도 기자로서의 동업의식을 꽤나 강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권에 의해 제한된 언론사만이 존재했고 그런 독과점의 특혜 덕분에 시각의 차이나 급여의 차이도 크게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여건이 됐습니다.
요즘은 언론의 독과점 지위가 무너졌습니다. 신문의 경우가 훨씬 심하고 방송은 아직도 그런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방송의 지위도 인터넷과 디지털의 진화에 따라 어떤 약화 과정을 거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세기적인 특종이 어느 매체에서 튀어나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꼭 규모가 크고 오래된 매체가 좋은 기사를 쓰고 특종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언론사 간의 시각 차이나 급여 차이도 매우 심해져서 동업의식보다는 차별의식, 심지어 대결의식마저 느끼게 하는 분위기입니다.
언론은 세상과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기묘한 성채에서 살아왔습니다. 언론사에 주어지는 특혜나 기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한정된 특권이 사람사는 세상에 함께 섞이는 걸 방해하고 별도의 자기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혼돈을 부추겼습니다. 정치권력이 제공한 그 성채에서 언론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왔습니다. 환상이 깨지고 거친 세상에 나온 요즘 언론과 기자들은 격변의 시기를 대부분이 힘들게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도 이런 격랑 속에 놓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은 어차피 변화합니다.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한 어느 누가 이 변화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변화를 외면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뚫고 나가 주도하는 것이 옳게 살아가는 최선의 길입니다.
머니투데이 1000호 신문을 제작하면서 그동안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는 것은 앞으로 헤쳐갈 앞날을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먼저 잘못과 허물이 떠오릅니다. 경제뉴스의 속보에 치중하다 보니 적지 않은 오보 등의 실수를 범했으며 때론 양적인 균형을 맞춘다고 애쓰다가도 제대로 된 균형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실수를 인정하는 데는 크게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 하늘 같은 노여움만큼은 피할 수 있었던 게 작은 위안입니다.
온라인 사이트를 연 지 5년째, 신문을 발행한 지 3년을 넘긴 지금 독자가 자연 증가하고 있는 점과 회사창립 세번째 회계연도인 2002년부터 흑자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꼭두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있는 200여 구성원에게 가장 커다란 격려가 됩니다. 이 귀중한 격려를 독자분들께서 주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PICK!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져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단으로 흔히 돈과 능력을 거론합니다. 제가 보기엔 매사에 궁리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훨씬 든든한 자산입니다. 쉬지 않고 이 궁리 저 고민을 하다보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차별화된 시각으로 차별화된 뉴스를 건져올릴 수 있다고 여깁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서 이 세상을 두루 살피고 이곳저곳을 발로 뛰면서 숨겨진 희망을 찾아내고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엮어내는 `희망의 전달자'가 되고자 하는 것, 머니투데이를 만들면서 가장 중시하는 원칙입니다.
날마다 엄청난 양의 일들이 쏟아집니다. 이를 하나의 시각으로 초지일관 꿰뚫어 무슨 당보를 만들듯이 다양성 대신 획일성을 선택하는 것은 큰 허물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자기 주견으로서의 시각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사실에 충실하려는 노력은 동서고금 변함없는 언론의 기본의무입니다.
가장 버리고 싶은 고질병은 잘하는 사람이나 기업의 평가와 칭찬에 인색한 폐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