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근칼럼] 경제 불안감의 실체①
경제가 엉망이다. 잘 가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서 동포들에게 우리 경제가 호황이라고까지 했으나 동의받기 힘든 의견이다.
5% 안팎의 연간성장률 등 거시경제적인 지표를 들이밀고 경제가 괜찮다는 주장을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곳곳에 쌓여있는 경제적 고통과 어려움이 감춰질 리 없다. 호황과 불황이 병존하는 경제. 그 양극화의 한쪽 극에서 더욱 엉망이 돼가는 경제현실은 내년쯤에야 가시화할 것으로 보이던 생계형 시위를 이미 촉발했다. 솥단지 시위.
내년엔 시위계층이 다양화할 것이고 심지어 실업자들도 일자리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말로는 위기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실제 행동은 벌써 위기임을 인정하고 부양에 나섰다. 금리인하가 그렇고 10조원가량의 돈을 한국형 뉴딜이라고 포장해서 내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이렇게 애써본들 효과는 별로일 것이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금리가 높아서도 아니고 10조원의 돈이 부족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인 기업들이 움츠러들어 투자 등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탓에 정부의 부양조치는 부양조치만큼의 효과는 거둘지언정 그 이상으로 기업들을 투자로 끌어들여 전체적으로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는데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왜 기업들이 움츠러들었는지 원인을 놓고 논의가 분분하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에서부터 정부의 성향이 좌파적이거나 분배우선주의라서 그렇다는 해석 등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 논의와 해석은 분분해도 경제적 불안감이 기업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까닭은 한 가지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 그들의 마음과 금고를 닫아걸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정부는 좌파적이라는 공격에 증거를 대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기업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들의 마음과 금고를 닫아걸게 만든 주체는 역시 정부다. 경제적 불안감을 유포한 핵심주체는 정부다. 정부는 억울하다며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심각성만 더할 뿐이다. 안개 속에서 겪는 듯한 흐릿한 불신, 뭔가 막연한 불안감이 뚜렷한 원인에 의한 불신보다 훨씬 위험하고 위력적이다. 정부는 기회만 되면 친기업적이라고 선언하지만 기업들은 정부가 반기업적이라고 판정하는 수준이다. 심각하다.
한 가지 조그만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알게 모르게 숫자를 매우 중시한다. 다수결주의인지 소수결주의인지 아무튼 숫자는 정부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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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이 툭하면 숫자에 밀린다. 부안의 핵폐기물처리장 건설문제도 숫자주의에 밀려 죽도록 일한 장관을 갈아치운 뒤 백지화됐고 새만금사업도 마찬가지다. 노사문제도 소수 경영층보다는 다수 노조가 여전히 우위다. 정부는 이미 노사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정리됐다고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업들은 안심할 수가 없다.
선거와 투표는 숫자다. 그러나 경제는 숫자가 아니다. 다수를 쫓아가면 오히려 망하고 소수의 길로 치달아야 성공하는 게 바로 경제다.
항상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경영인이 1명의 사람과 1000명의 사람 중에서 1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인정할 만한 승부수다.
숫자주의는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정부와 기업 간의 거리는 2년여 전의 출발시기에 비해 더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다.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나는 본다. 물론 기업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참한 수사학의 언어들이 오가는데 그 와중에 경제는 골병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