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늙은 경제와 젊은 경제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TV프로를 애청한다. 얼마전 페스트푸드를 좋아하는 비만 어린이의 혈액,혈관검사 결과를 방영했다. 놀랍게도 40대 중년의 것과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동물성 지방에 들어있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어린이의 혈관,혈액을 노화시켜 당뇨와 같은 성인병을 유발한다고 했다.
경제에서 돈은 혈액에, 금융기관은 혈관에 비유된다. 공장을 짓거나 근로자들이 일하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모든 경제활동들이 돈이 흘러가며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이같은 생물학적 비유를 이용해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설명하기도 한다. 경제의 혈액이라 할 수 있는 돈의 노화가 일본경제의 활력을 앗아갔다는 분석이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해 무려 1400조엔(한화 1경4000조원)의 가계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나라가 됐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을 쥐고 있는 대부분 사람은 다름아닌 80세가 넘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마지막 생계자금을 10년, 20년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산업에 투자할 리 없다. 이자가 적더라도 은행예금같은 안전한 곳에만 넣어두게 됐고 이 때문에 일본 가계금융자산 가운데 예금.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말 55%에 달했다.
위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돈, 실패할 확률도 크지만 큰 수익을 기대하는 돈을 ‘리스크 머니(Risk money)’라 한다. 일본경제가 활력을 잃은 것은 ‘리스크 머니’는 마르고 ‘늙은 돈’만 흐르기 때문이란 진단인 셈이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꿈을 꾸는 DNA가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한국도 비슷한 걱정을 해야할 처지가 됐다. 국내 가계자산은 은행으로 몰려있다. 지난해말 한국 가계금융자산 가운데 현금.예금 비중은 57%로 일본의 55% 보다 더 높다. 15~20년후 성인 3명중 1명이 65세이상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어서 안정자산 선호는 더 심해질 것이다.
더욱이 한국 주식시장을 점령한 외국인 자금에 기대를 걸기도 힘들다.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浮動)자금은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며 공돈 벌 궁리만 하고, 그 사이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점령해 기업 미래 잠재력을 키우는 것보다 고배당과 주가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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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새 외국자본이 밀려들면서 미국식 단기실적주의도 따라 옮겨오고 있다. 외국자본이 대주주인 한 증권사의 전직 CEO는 “외국인 주주측은 회사의 잠재력을 키우는 문제에는 소극적이고 눈앞의 이익만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주가 관리와 고액배당을 요구하는 외국인들의 등쌀에 시달린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단방약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왔다. 과거 12.12 부양책처럼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를 띄우지 않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그러나 시중자금이 주식시장을 계속 외면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문제다. 우리 경제가 조로(早老)증에 걸려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