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근칼럼] 2005년의 허리띠
연말, 새해를 얼마 앞둔 시점인데도 `설레임`은 실종됐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같은 게 마음 속에 생겨나지를 않는다. 어려움의 연속일 거라는 예상. 올해보다 더 못할 수도 있는데 누가 또 실직자와 사업실패자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지.
저 거리를 보라. 잔뜩 웅크린 행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삶의 희망과 기쁨 여유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불안 좌절과 쪼들림을 읽을 수밖에 없다. 이는 괜한 비관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신년에 대해 벌써부터 불안을 얘기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볼 때 도무지 좋아질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여건을 따져 보면 수출이 예전같을 수가 없다. 중국 위안화가 하락조정되고 나면 사정이 다소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선 수출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둔화된다는 전망은 그 자체가 패닉을 유발할 정도의 사안이다.
사람들의 소비와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지표상으로는 좋아질 때도 되었건만 더욱 얼어붙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아무리 실적이 괜찮은 기업들조차도 사람을 줄이고 경비를 삭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이 경비를 20∼30% 줄이고 잘 나가는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또다시 인원축소에 나서고 있는 현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소비가 늘기를 바랄 수 있는가. 경제주체들로선 쓸 돈이 없는 것이다.
실적 좋은 기업들이 경비와 사람을 줄이는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최소한의 투자 외에는 나서려 하지 않는다. 리스크가 좀 있는 투자는 절대 불가다. 이는 경제외적인 억제요인에 의해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기업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위험하게 만들려고 들지 않는다. 불확실한 수익을 위해 스스로의 운명을 건다는 건 커다란 모험이고 기업들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해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경제철학과 인선에서 큰 틀을 바꾸지 않는 한 기업들도 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통성적으로 돌아가는 수준 말고는 내년경제에서 바랄 게 마땅찮다. 오로지 한국형 뉴딜이라는 어정쩡한 정부주도형 경기진작책이 마련되고 있을 뿐인데 그조차도 실제로 어느 정도의 모양새일지 종잡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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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내년에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가. 실직했던 사람들이 다시 일자리를 얻는다든가, 실직한 사람들이 뭔가 가게를 새로 내 꾸려 간다든가,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좀 더 늘어난 일자리 덕분에 백수에서 탈출한다든가 그런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데 예상은 영 기대난망인 것이다.
거꾸로 저성장과 고실업 고물가 등이 전반적으로 경제주체들을 괴롭히는 가운데 특히 구조조정으로 또 일자리를 잃거나 퇴직금으로 연 가게가 잘 안돼 실패하는 중장년 자영업자들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일부 예외가 있어 투자하는 부자기업들도 있고 씀씀이를 늘리는 부자개인들도 있겠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나 기업들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한해가 될 것이다. 기업으로 생존하고 개인으로서 살아남으려면 벌이가 시원찮은 것을 허리띠 더 졸라매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처럼 어려운데도 테크노크라트로서의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청와대 경제브레인의 원칙론에 부딪치고 정치권의 애매한 눈치보기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부총리 정책의 옳고그름을 떠나 지금과 같은 경제여건에서 테크노크라트의 입지위축은 어려운 상황을 더욱 걷잡을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정치권이나 청와대, 혹은 정부 경제팀은 골치만 아프면 되지만 서민 당사자들은 몸으로 그 어려움을 겪어 나가야 한다. 논란 속에 그들만 불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