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융 비저너리' 키우자
영국의 몇몇 대학원 MBA코스에는 “Management of Change"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이는 경영자가 되려면 변화를 읽고 그에 대응하며 나아가서 변화를 주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에서 보듯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의 열쇠인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국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그러한 과목이 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특히 최근 정보화 사회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변화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엄청난 변화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지만 순간순간 깨닫지 못하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저만치 있는 과거의 모습이 마치 빛바랜 사진 속에 머물러 있는 촌스러운 우리의 모습처럼 어느 듯 변하여 있음을 보고 새삼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하듯 우리가 항상 변화를 말하고 또 변화는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익숙한 것이지만 그 '결정적 순간'(moment of truth)을 깨닫고 예측하기란 어렵다.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우리는 쉽게 변화관리에 따른 기업 또는 국가의 부침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산업 및 정보화 사회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에 그저 수동적으로 이끌리거나 순응하는 자세를 넘어서 변화를 주도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무엇이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세계 최고의 트렌드 마케터로 지칭되는 샘 힐 (Sam Hill)은 그의 책 “Sixty trends in sixty minutes” 에서 트렌드가 세상을 움직인다면서 ‘추세거장(趨勢巨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추세를 제대로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만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그 예로서 제롬 레멜슨(Jerome Lemelson), 스티브 잡스(Steve Jobs),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등을 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샘 힐의 다양한 설명을 빌릴 것 없이 변화 - 샘 힐은 ‘추세’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를 분석하고 그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였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PICK!
제롬 레멜슨은 바코드 스캐닝을 특허 등록한 현대판 에디슨으로 에디슨에 버금가는 558개의 특허를 갖고 있었으며 실질적인 상품을 만든 적은 없지만 트랜드의 초기 징후를 찾아내어 특허를 등록한 사람이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컴퓨터를 만들면서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여는 등 트랜드를 창조하고 차세대 핵심기술을 가장 먼저 업계에 소개하여 선구적으로 비즈니스를 재정의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처럼 이들은 신기술의 미래 방향을 보는 천재성을 소유한 ‘비전家’ (Visionaries)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금융시장에 옮겨보자. ‘The Banker' 지 금년 7월 호에 세계 1000대 은행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보면 상위 25개 은행의 자산총액이 전체 은행 자산 총액의 37%를 점하며 그 비중이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세계의 은행들은 집중화, 대형화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금융기관의 생멸은 그 이름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으며 최근에도 유럽에서는 국경을 넘어 각국은행들 간의 Cross-border M&A가 성행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산업은행이 10여 년 전 국제투자은행으로 나아가기 위해 벤치마킹했던 세계 유수 국제투자은행들조차 합병으로 그사이 이름이 모두 바뀌어 버렸으니까.
또한 인터넷뱅킹 등 전자금융의 확대로 IT시스템 없는 금융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금융업이 장치산업화 하였으며 업무영역도 날로 확대되고 있고 마켓플레이어 역시 다양화 되어 영국에서는 심지어 수퍼마켓같은 비은행 금융기관들 까지 금융시장에 빈번하게 침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작금의 국내 환경은 어떠한가? 한국시티은행의 출현에 이어 HSBC까지 가세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생존경쟁이 치열해 지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변화를 정확히 읽고 변화를 주도하는 자가 살아남을 것인바 금융의 제롬 레멜슨 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금융 비저너리’를 확보한 기관이 승자가 되지 않을까.
영국의 경영학자 매리 폴레트(Mary Follett)는 ‘상황의 법칙 (Law of situation)’이라는 말을 하였다. 즉 경영자는 상황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의사결정 및 지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변화를 주도하는 것을 포함하며 그 일을 주도할 사람을 양성하는 것 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금융기관의 경영층은 금융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금융 비저너리’의 양성을 화두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그동안 세계 금융시장에도 ‘추세거장'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유명 펀드메니저들도 있고 새로운 상품영역을 만든 사람들이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 은행업무의 핵심인 중개업무는 사양화 되고 업무영역이 한없이 넓어진 현재의 시장상황, 그리고 외국자본과 국경없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국내금융시장의 변화된 여건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우리 금융시장의 미래 방향을 주도하는 많은 ‘금융 비저너리’의 출현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