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코리아 셀프 디스카운트
삼성전자한 달 순이익 규모가 1조원에서 8000억원으로 줄어든 것은 ‘실적 악화’인가, ‘실적 둔화’인가? 악화는 아니더라도 둔화 아닌가? 지난주 로또 1등에 당첨돼 50억원 대박을 터트린 사람이 다음주 꼴찌에 당첨돼 5000원 받았으면 운이 나빠진 건가?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있는 미국 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달에 1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람들의 간이 글로벌 사이즈로 커졌다. “2000억원이나 줄었잖아..”
한 증권사 CEO는 이에 대해 “도대체 언제 한국기업이 한달에 8000억원을 벌었단 말인가. 그러고도 실적 악화, 실적둔화라며 위기관리한다면 우리 같은 기업은 문닫아야지..” 라고 말했다.
얼마전 증권거래소가 발표한 544개 상장사의 실적 기사가 그랬다. 올들어 3분기까지 상장사가 사상최대 규모인 39조원을 벌었는데 3분기에는 2분기에 비해 2.84% 순이익 규모가 줄어들었다. 신문 기사들은 대부분 ‘실적 악화 또는 둔화’로 보도됐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1일 기자단과의 송년오찬에서 "최근 언론에서 각 기업들이 비상경영을 선포했다고 야단이기에 직접 알아봤는데 모그룹 빼고는 실제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곳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CEO들이 내년 경기를 비관한다는 설문조사 기사에 대해서도 “CEO들은 그런 설문에 잘 응답하지 않으며, 실무자들이 신문을 읽고 적당히 대리응답한 것도 많은데 떠들썩하게 보도했다”고 했다.
만나는 기업 관계자들마다 어렵다는 소리뿐이었는데 다행히도 국내 최대 경제단체장이 “정확히 알아보면 그렇지 않은데 기자들이 잘못 안 것”이라고 공식 해명해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증권사들이 내놓은 내년 주가 전망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도 논란거리다. 들리는 것은 탄식 소리 뿐인데 증권사들은 대부분 내년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는다고 예측한다. 삼성증권과 교보증권이 1000을 넘지 못할 것으로 봤지만 950을 넘어갈 수 있고 적어도 750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한국 주가가 1989년, 1994년, 2000년 등 세 번 1000을 넘었다. 그때마다 경제성장률은 8~10%에 달했다. 그런데 3%대로 경제성장률이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 과연 1000을 넘을 수 있을까?
“주가가 900 밑으로 떨어지면 무조건 사라”고 외치는 이원기 메릴린치증권 전무의 대답은 이렇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오류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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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허구헌날 멱살잡이하는 정치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렇게 부대끼면서도 투표로 정권을 교체한 이후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CEO는 “노벨상조차 한국인이 탄 뒤로 평범한 상으로 전락한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이 타는 것은 문제 아니냐, 돈 주고 사온 것 아니냐고 스스로 흠집을 내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겠는가”라고 한탄했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남들이라도 알아주니 다행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얕잡아 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깔아뭉개는 ‘코리아 셀프 디스카운트’시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