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甲申年에 묻어야할 것들

`국가경쟁력 순위가 30위권을 들락거린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평균치보다 3%포인트나 낮은 4.7%대에 머물렀다. 내년엔 다른 아시아국가와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환율까지 내려가고 있어 기업들은 암담하다. 무엇보다도 과거 40년간 구가했던 고도성장이 불가능해졌다.'
`청년(15∼29세)실업률이 7.3%(11월)를 넘어섰다. 가계부채는 465조원(9월말)을 넘어서 사상 최대치다. 소비자들의 기대지수나 기업들의 경기전망도 수개월째 최악의 상황. 생활고에 쫓기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다. 공교육은 망가졌고, 이민 희망자들은 줄서 있다.'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좌우익 논쟁과 각종 개혁입법에 발목이 잡혔다. 국회의원이 농성하는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 행정수도 이전, 정부 투자계획, 부동산정책 등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공무원들이 자기 조직의 수장을 현상수배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올 한해 주요 언론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이다. 총체적인 난국이 아닐 수 없다. 나라가 금세 결단날 것만 같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전부'일까. 이번엔 다른 면을 보자.
우리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을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유럽 강소국 스웨덴과 스위스, 두 나라를 합친 규모다. 환율이 하락한 덕이긴 하지만 내년 1인당 국민소득은 1만7000달러까지 오르게 된다. 이미 `마의 1만달러' 벽을 넘었고 3, 4년 뒤엔 2만달러 벽을 넘는다.
주요 무역상대국들의 물가변화까지 감안한 실질실효환율이 96년 수준에 육박하지만 경상수지는 계속 흑자를 내고 있다. `환율장사'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 확보에 성공한 기업들이 늘어난 덕택이다. 우리 기업들은 선박,메모리반도체,가전,디스플레이, 휴대전화분야에선 이미 국제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올림픽 월드컵 무역박람회 등을 차례로 개최했다. 중국도 아직 손대지 못한 국제적 이벤트들이다. 최근엔 일본의 공영방송이 황금시간대에 `한국 제대로 알기'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각종 시위와 폭력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인 줄만 알았더니 쿨(cool)한 사람이 많은 나라라는 각성이 배어있다.
공교육에 넌덜머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가지만 학생들의 수학과 문제해결 능력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고루함의 상징이었던 대학사회도 드디어 구조조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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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인가. 아시아에선 거의 유일하게 지배권력의 교체를 경험한 나라가 한국이다. 경쟁국인 일본 싱가포르 홍콩도 이루지 못했다. 또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으로 50여년 동안 금기시됐던 좌파이념이 드디어 제도권에 착근했다. 구성원들이 똑같은 생각으로 매스게임하듯 움직이는 사회보다는 훨씬 건강하다. 미국과 북한을 보는 눈도 보다 세밀해졌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넓어진 것이다.
며칠 뒤면 닭의 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밝아오듯 아무리 비관적인 분석과 전망이 횡행해도 높아진 우리의 위상과 경쟁력을 낮출 수는 없다. 현실을 고루 살펴보고 자신감을 찾는 것, 이것이 을유년을 맞는 우리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