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민연금의 비극적 운명

[광화문]국민연금의 비극적 운명

유승호 부장
2005.01.13 12:45

[광화문]국민연금의 비극적 운명

지난해 국민연금을 경기부양에 동원하느냐 마느냐란 논란이 있을 때,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알토란 같은 국민 돈(국민연금)을 사용하는데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국민연금의 비극적 운명이다.

국민연금의 비극은 '연못속의 고래'로 비유될 수 있다. 새끼고래일때는 구경거리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고래가 부쩍부쩍 자라면서 상황은 참담해진다. 1996년에 22㎏이던 것이 2004년말 130㎏으로, 2035년엔 1.7톤으로 커진다. 급기야 고래가 연못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그 고래는 어떻게 될까? ‘고래가 더이상 움직일 수 없어 죽을 것’이라고 답변하면 틀렸다. 고래는 그 전에 죽는다. 연못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96년 22조원이던 것이 지난해말 130조원, 2035년엔 1700조원으로 불어나게될 것이란 전망이다. 많게는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1700조원으로 늘어나기 전에 우리 경제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국내 채권,주식을 싹쓸이하다시피하면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같은 우량주들이 과대상승(오버슈팅)할 것이다. 그래서 못사겠지만 사더라도 팔 수가 없게된다. 팔면 급락하기 십상이다. 이같은 `고래 효과'때문에 국민연금이 채권시장에 투자하든 부동산시장에 투자하든 가는 시장마다 망가뜨려놓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측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3조9691억원이던 해외채권 투자액을 올해 8조9691억원으로 5조원가량 늘려잡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내 실업률은 갈수록 높아가고 양육비 부담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국민 주머니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강제 갹출해 다른 나라 정부나 기업에 투자하는 꼴이다. 해외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문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국민연금의 비극 그 자체다.

국민연금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록 경제 전반의 활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자금운용과정을 일일이 국정감사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채와 같은 가장 안전한 곳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수익률을 높여 칭찬 받는 것보다 투자손실을 감수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이처럼 보수적인 자금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자금, 리스크머니(Risk money)가 없는 늙은 경제에서 기업 혁신, 기술개발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민연금의 덩치가 비대해질 수록 우리 경제에 갖가지 고래 증후군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5년인 정부들이 10년, 15년후에 다가올 해일을 걱정해 이 번잡스러운 일에 에너지를 쏟을 지 의문이다. 국민연금의 덩치가 더이상 커지기 전에 국민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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